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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라도 붙잡고 축배의 잔을 들고 싶다. 와인그라스 가득 채워서.....


BY 박 라일락 2002-12-18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이른 아침 포항공항.
 잿빛 하늘은 어제 저녁밥 굶은 시어미 인상처럼
 꼭 길 떠나는 내 심정을 대신하는 것 같다.


 그래..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검사결과가 좋지 못해서 연장치료를 받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신이 나에게 내릴 수밖에 없는 선택이니깐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감수해야 하는 거고..


 마지막 치료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너무 힘들었던 고행의 끝자락을 
 이젠 벗어날 수 있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순간..
 다시 검사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서 
 연장치료도 염두에 두라는 담당의사의 그 말에
 며날 며칠을 두고 보이지 않는 눈물로 
 찢어지는 생가슴을 앓고 있었지..
 당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어찌 그 고통을 알랴...


 도착지 김포공항 하늘도 심상치 않다.
 잔뜩 찌푸려서 괜히 옆 사람과 시비라도 걸 모양새 같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내 마음자리를 차지한다.
 젠장 할..
 날씨까지 덩달아 사람맘 우울하게 하네.


 병원 가는 길.
 빠른 택시와 공항버스를 두고 
 지하철 한 칸에 축 처진 육신을 의지했다.
 풋풋한 사람냄새가 그리워서..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내 설움을 달래고 싶어서..


 오늘도 종합병원은 늘 북새통 시장판 같다.
 하루에 이용하는 환자수가 자그마치 6~7천명이라고 하니
 병원 오면 멀쩡한 사람들 보다 
 온통 아픈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 착각을 일게 한다.


 환자를 앞에 두고 의사는 말이 없다.
 컴퓨터 화면에는 며칠 전에 검사받았던 자료가 검색되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죄지은 자 공판을 받는 것처럼 자꾸만 불안하다.

 무거운 침묵이 끝나고..
 “이번 후유증도 심했습니까?”
 “예.”라고 대답하고 싶은 게 기정사실인데..
 “아니에요, 그런대로 참을 만 했습니다”함은
 그라면 더 연장치료가 필요하다고 할까봐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튀어나오고..
 “그래요? 음....어디 함 보자.
 혈액검사에 이상 없이 깨끗하고.
 X레이 결과 방사선 치료로 좀 상한 폐도 원상복귀 되어 가고.
 복부초음파 검사 별 이상 없이 다 좋고.
 마지막으로 뼈 검사결과 함 봅시다.
  아~ 뼈에도 전연 전이되지 않았고..이젠 다 끝났습니다.“
“선생님. 제 병이 완치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연장 치료가 필요 없는....“
 “그럼요, 이제는 내과 의사인 나와 만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완치된 환자들 거의가 짧게 혹은 길게 약을 복용을 하는데
 환자께서는 약도 복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외가 정기검사만은 잊지 말고 받도록 하세요. “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의 병을 고쳐주셔서..”
 “무슨 말씀을..
 그 어려운 치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 완치되니
 의사로써 사명감을 다한 것 같아서 제가 도리어 고맙지요“


 통신으로 만나서 친 자매처럼 정을 나누고 있던 
 아우님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식을 듣고 
 너무 좋아서 나를 포옹하고 기쁨을 토한다.
 “형님. 고마워요. 그리고 완치되어 축하해요.”
 “응. 그래 나도 고마워. 함께 맛있는 점심이나 먹자꾸나..”


 일년 가까운 긴 긴 세월을 지쳐서 암담하기만 하고 
 희망이란 자락이라곤 전연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방황의 연속이었는데 
 더디어 종지부를 직고 탈출하는 오늘 같은 날..
 그 누구라도 붙잡고 축배의 잔을 들고 싶다.
 와인그라스 가득 채워서..


 결과를 기다리던 가족들 음성에도
 혈연의 정이 무엇인지..보이지 않지만 눈물이 촉촉하고.


 긴 여정 끝에 지쳐서 하루를 서울에서 머무는 시간에
 사이버 공간에서 만난 많은 인연들한테도 전화가 빗발친다.
 어떤 분들은 행여나 싶어서 집으로 결과를 물어 오시고..
 기분 좋은 소식에 다 함께 기뻐해 주시니 
 너무나 고맙기만 하나이다.


 병으로 인하여....
 잃은 것도 많지만 정신적으로 얻은 것도 있사옵니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서 절대 살 수 없다는 것을!


 "에세이 방"님들.
 그 간..
 저에게 늘 격려하고 위로해주시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셔서 
 이 뇨자 병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함에 머리 숙여 인사드리옵니다.
 이제 곧 제 자리 일상생활로 돌아가서 
 한 여인의 삶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누구라도 붙잡고 축배의 잔을 들고 싶다. 와인그라스 가득 채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