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다닐때 친정조부님이 치매에 걸리셨다
맏손녀이기에 무척이나 아껴주시고 귀여워 하셨지만
타지의 학교공부를 핑게삼아 병드신 할아버님을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하고 할아버님이 돌아가시자 난 참 많이
후회를 했다
남다른 손주들의 사랑으로 할아버님은 첫차로 오셔서
손주들을 보시고 막차로 가시던 분이셨다
조부님께 드리지 못한 효도를 조금이나마 갚아드리는
의미로 난 몇몇의 봉사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치매병원을 찾는다
목욕을 마친 치매병실의 할아버지 할머님들은 창가에서 햇볕을 쬐거나
탁자에 머리를 대고 조는지 생각에 잠겨있는지 미동도 없다.
갈 때마다 별반 다름없는 치매병동의 풍경이다.
그분들이 알아듣건 말건 나는 내 방식대로 인사도 하고 말도 건넨다.
얼굴을 아는 환자들은 나를 보고 웃어 보이며 반가운 내색을 한다.
할아버지들의 수염 깎는 일로부터 그분들과의 함께 하는 시간은 시작된다.
"할아버지 고개 좀 들어보세요 예쁘게 수염 깎아 드릴께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힘없이 고개를 든다
수염을 다 깎고 나면 손톱을 자른다.
대부분 손 움직임이 정상적이지 못한 분들이라 손을 덜덜 떤 다거나
뒤틀려 있어 손톱 깎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얌전히 손을 내밀어 주다가도 갑자기 행동이 돌변하여 소리치고 할퀴기도
해서 언제나 상대방의 행동에 주시를 해야한다.
처음 그분들의 손을 만졌을 때 난 전류에 감전된 것처럼 섬짓 했다
적응 못한 내 이기심이 가슴 밑바닥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다시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핏기 없는 손은 차디찼다.
역한 냄새에 몇 번이고 뒷걸음질 쳐서 비겁자 처럼 도망가고 싶었다.
내 속에 있는 두려움과 위선에게 수없이 되 뇌이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든 적응기간 이란 게 있는 거야
넌 잘 할 수 있을 꺼야 무조건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순분이 할머님의 손톱을 깎으며
"할머니 시원하시죠?" 하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다 내가 손톱을 말끔히 다 다듬고 나면 꼭
한마디 잊지 않는다.
" 복 받을 끼여..."
그러면 난 이렇게 대꾸한다.
"할머니 그거 어디가면 살수 있어요?"
여고 국어선생님이셨던 이화할머니는 조선시대 기생 매창이가 지었다는
시를 줄줄 읊는다
"이화 우(梨花雨)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여라"
추풍 낙엽을 보고 님 그리는 매창이나, 이화할머니의 가슴에 쌓인 세월의 무심함과
정에 이끌린 마음의 공허가 사무쳤기 때문일까?
건장한 체격에 호남형인 할아버지는 치매라는 병만 아니면 점잖은 노신사로 보인다.
그러나 그분은 처절하리만큼 애절하게 한 단어만을 외친다.
"어~~~~~~엄마"
너무나 수고하고 수고하여 손에 지문 마저 반질거리는 엄마,
신열이 끓어도 배가 뒤틀리게 아파도 거친 그 손이면 낫게 하는 엄마,
자식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도 정작 자신은 기다려야만 하는 엄마,
그랬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할아버지의 엄마, 우리들의 엄마였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애순 할머니는
발음도 흐릿한 일본말을 쉴새없이 앵무새처럼 중얼거린다.
우리 봉사자들을 보면 만면에 웃음을 띠고 함께 일본으로 가자고 한다.
그 웃음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나도 모르게 회한에 젖어 눈물짓는다.
어쩌랴..! 자신들도 모르게
인간퇴물이 되어 속절없이 잊어가고 잊혀지는 것이 외롭고 허무한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유통 기한이란 게 없는데
"해가 저물었으되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고
한해가 장차 저물려 할 때 귤 향기는 꽃 다웁다"
라는 채근담의 구절같이 늙는다는 것, 병이 든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어쩌면 열정과 이상의 상실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고단한 꿈도 어머니의 자애로운 꿈도 이제는 강건너 깜박이는 불처럼 아득하다
누구를 위해 사랑을 나눌수 있는 용기와 기억할수 있는 사람을 가질수 있다는 의지만으로도 우리는 축복스럽다
비록 저무는 황혼의 빛깔과 풍기는 향기가 아름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그분들의
진지했던 지난 삶만으로도 우리의 오랜 기억 속에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분들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 우리모두에게 사랑할 가슴만 남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