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남편분 옆에서 간호에 여념이 없으실 우리 house54님께서
얼른 좋은 소식을 갖고 다시 돌아오시길 바래봅니다.
건강에 유의하세요.
또, 언니를 위해 골수기증을 끝내고 지금쯤 저린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현신엄마의 아름다운 사랑이 언니의 백혈병을 완치시켜 줄 것을 바랍니다.
현신엄마, 얼른 회복되고 같이 유명산 놀러가야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지요?
인생이 아름다운 건 우리 마음 속 어디쯤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
계산되지조차 않는 아름다운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형제자매간의 사랑 또한,
혹은 생면부지의 사람에게서 아무런 댓가조차 기대하지 않고
받은 의외의 사랑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거겠지요?
그래요...
바로 '아줌마'님의 과감한 공개사과문처럼 말이죠.
참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어요.
강희님께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하실 때, 아줌마님께서
과연 대한민국의 멋진 아줌마답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발언을 하셨지요. 예상치 못한 이런 일들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같은 여자로, 같은 아줌마로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서로 보듬어 주는 그런 사랑을 함께 하기로 하였음 해요.
그런 용감한 모습을 보자 못내 그런 사과의 말을 전해주지 못한 저의 부끄러운 일 하나가 떠올랐어요.
몇 년전 일이랍니다.
그래요... 벌써 5년이 되었네요.
바로 아랫층에 너무나도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생겼어요.
아이들 나이가 같으면 엄마들끼리도 친밀감이 생겨 아이들은 저희들 끼리 놀고, 엄마는 또 엄마들끼리 여러가지 세상일 얘기로 재미있게 지내잖아요.
아침 일과를 끝내고 나면 함께 커피를 마셨고,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어 비빔밥을 만들어 점심을 나누고, 비오는 날엔 오징어를 썰어넣고 부침개로 식사를 대신하고, 슈퍼를 함께 다니고, 책을 사면 나눠보았지요.
이웃사촌이 좋더라는 말을 실감하면서 우린 그렇게 친하게 지냈어요.
문제는 아이들에서 비롯됐어요.
애들 싸움 어른 싸움으로 번진다는 그 말을 생전처음 당해보면서
참 이렇게도 딱 들어맞는 말이 있다니.... 하며 어이없던 기억말이죠.
작은 애가 4살이었지요.
생일이 빠른 작은 애를 집 앞에 있는 어린이 집을 보냈고, 그 집의 작은애도 그 어린이 집을 다니게 되었어요.
1살 차이였지만 같은 반이 되었구요.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역할극을 하는데 서로 플라스틱 큰 칼을 집어들고 차지하겠다고 다툼이 일어난 모양이었어요.
그러던 중 우리아이가 그 집 아이에게 달려들어 얼굴에 손톱 자욱을 내 버리고 만 거예요....ㅠ.ㅠ
당황한 선생님께서 두 아이를 떼어놓았지만 이미 손톱 자욱은 얼굴에 여러군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먼저 전화를 주셨지요.
"민이어머님, 민이가요 택이 얼굴을 꼬집어 놓아서 여기저기 손톱 자욱이 났는데요, 택이네집에 가셔서 사과하셔야 할 듯 싶어서요.."
일단 놀랐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택이네이니만큼 저는 크게 문제시 여기지 않았어요.
그게 문제였지요.
자초지정을 얘기하고 있는데, 택이엄마에게서 느껴지는 그 차가운 바람, 시베리아 벌판에서 몰아치는 한 겨울 바람보다 더 차가운 그 느낌은 결코 잊을 수가 없네요.
제게 눈길 한번 주지않고 씽크대에서 컵을 닦고 있는 그녀의 차가운 뒷모습.
베란다 밖으로 아이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역시 아이들 답게 언제그랬냐는 듯 손을 잡고 장난을 치며 깡총거리며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이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지요.
현관에 들어선 택이 얼굴엔 여기저기 작은 손톱자욱이 남아 있었어요.
"어머, 택이야, 많이 아팠겠구나... 민이가 너보다 어리잖아. 미안해. 아줌마가 미안해.. 선생님께서 약 발라주셨구나?"
아이 얼굴엔 연고를 바른 자욱이 있었어요.
"아줌마, 괜찮아요.. 아까는 따가웠는데 이제는 안 아파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그때 택이엄마가 나섰어요.
"손톱자욱 평생 지워지지도 않는다는데, 얼굴이 그게 뭐야?
민이, 너 나 좀 보자! 형 얼굴 저렇게 해 놓으면 어떡해? 담엔 그러지 마!"
제가 혼나는 것처럼 가슴이 뛰더군요.
미안하다고 말을 흐리고는 제 아이를 데리고 올라왔지요.
무척 화가 났으니 어떻게 풀어줘야 좋을 지... 생각하면서요.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하루, 이틀 후쯤 다시 찾아갈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나봐요.
하루가 지났어요.
택이엄마가 노여운 목소리로 전화를 한 것은.
"이제 보니 민이엄마 정말 너무한 사람이네. 아이 얼굴을 저 지경으로 해 놓았으면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게 아냐? 엉? 참고 있어 보자보자 하니깐 정말 너무 하네. 아이가 성질 사나운 거 다 자기 닮아서 그러는 거 아냐?"
평생 살면서 들어 본 말 중에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요.
아이의 실수로 인정을 하지 않고 성격까지 운운해가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싸워도 이렇게 하진 않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거든요.
말이 가슴에 칼처럼 꽂힌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요?
몇마디 변명을 하려 해 보았지만 이미 노발대발 해 있는 택이엄마의 마음을 돌이키기란 쉽지 않았어요.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그 택이엄마에게 저런 면이 있었던가, 우리가 서로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맞았던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요.
연고를 사다주고 제과점에서 맛있는 빵을 사고 몇번 사과의 말을 하고, 볼 때마다 다시 회복하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택이엄마의 마음은 이미 돌이킬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일년후 택이네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어요.
갑자기.
이삿짐이 떠나기 전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1층으로 내려갔지요.
"택이엄마, 미안해. 가서 행복하게 살았음 좋겠어. 손톱 자욱이 없어지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꼭 연락해. 이렇게 헤어져서 정말 서운해."
"민이엄마, 나도 그땐 너무 화가 나서 그랬는데, 미안해. 잘 있어"
그녀의 마른 손을 꼭 잡아주곤 돌아섰지요.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지금 어디 살고 있는지, 남편은 여전히 잘 나가는 지, 아이 얼굴엔 손톱자욱이 남았는 지 궁금하네요.
그녀와 그렇게 헤어진 것이 못내 걸렸던지 가끔은 그집 애들이나 그녀의 꿈을 꾸곤 한답니다.
지금쯤 우리를 용서했을까요?
손톱자욱이 얼굴이 남아있을까요?
만약 어디선가 택이엄마가 이글을 읽는다면 정말 미안했었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그때 미안하다고 여러번 말했어도 냉담했던 택이엄마가 이제는 용서를 해 주었으면 한다고요.
손톱자욱이 아직도 있을까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고,
세상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용서받지 못할 어떤 일을 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잊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이 밤,
행여 잊지 못할 분노의 어떤 일들이 있었걸랑 용서해 주세요.
잊어주세요.
부모자식지간인데 감싸주질 못할 일들이 어디 있나요?
형제자매지간인데 이해해주질 못할 일들이 어디 있다구요?
이웃지간인데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세상 누구와도 잠깐 입장을 바꿔 놓으면 좋은 방법이
떠오를거예요.
시간이 늦어지니깐 이제 바람도 시원해지는걸요.
다시 문단속하고, 애들에게 이불 차지않나 다시 챙겨보고 자야겠어요.
여러분도 좋은 밤 되세요.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택이엄마,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