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은행을 한 상자 선물받았다.
반갑긴 했지만 껍질 깔 일을 생각하면 좀 걱정스러웠다.
껍질을 다 까서 구운 것은 먹어 보았지만, 한 번도 내가 직접 껍질을 까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실수를 하고서, 어제 드디어 껍질을 잘 깔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될까 해서 그 방법을 알려 드린다. 물론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펜치같이 생기긴 했지만 가운데 톱니같은 홈이 있는 기구(이름은 모름)에 은행을 그 홈에 넣고( 이 때 은행의 위치를 잘 두어야 한다) 적당한 힘을 가하면"딱"하고 명쾌한 소리를 내면서 은행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그 다음 은행알을 꺼내면 된다.
밤에 남편에게 나의 명석함(?)을 자랑하며 힘들여 깐 은행을 구워 주었다.
그 연두 빛 색깔하며, 그 쫄깃한 감촉이며...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남편이 선뜻 자신이 은행 껍질을 까 주겠단다...
그래서 남편에게 내가 터득한 방법을 전수해 주고, 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남편 혼자 하는 것이 좀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옆에서 영화만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맘도 들어서 같이 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분업이었는데, 남편이 일단 은행의 선을 따라 펜치 비슷한 그 기구로 두 쪽으로 갈라 놓으면난 은행알을 꺼내는 것이다.
물론 은행알을 원형 그대로 꺼내는 것도 쉽진 않다.
처음 시작은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서 난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만 하자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남편은 계속 은행을 펜치로 눌러서 내 앞에 수북히 쌓아 놓았다.
난 은행 까기를 그만두고, 누워서 영화만 봤다.
남편은 자신이 목표로 한 만큼의 양을 까고서야 은행 까기를 멈추었다.
늘 그렇다.
남편에 비해 나는 인내심도 끈기도 좀 모자란다.그렇다고 남편이 그 점에 있어서 나를 비난한 적은 없다.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이 나의 모자라는 점을 보충해 주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에게 고마워 한 적은 없었다.
난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이 싫다.
마늘 까기나 빻기, 콩나물 다듬기, 멸치나 북어를 손질하는 것, 새우 껍질 까기 등.
그래서 그런 일은 늘 남편이 많이 해 주었다. 지금이야 남편이 워낙 바쁘니 어쩔 수 없이 내가 하지만...
대신 지금은 딸애가 많이 도와준다.
그런데 얼마 전 딸애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단지 엄마가 하기 싫어하시니까 아빠나 내가 하는 거지."
아! 난 어리석게도 남편이나 딸애가 그런 일을 즐겨하는 줄 알았다. 아니 적어도 싫어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는데...
남편이나 딸애가 해 주는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했으니, 난 정말 이기적인 인간이었나 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그 사람 대신 해 주는 것.
자신도 하기 싫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즐겁게 하는 것.
그래서 하나보다는 둘이 더 좋고...그래서 결혼을 하나 보다.
수북히 쌓인 은행알을 보면서 흐뭇해 하는 나를 바라보며 남편도 즐거운 표정이다.
우리 부부는 이런 방법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즐겁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