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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BY kjyoung123 2002-12-03

미역국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장인은 육이오 때 가족들과 헤어졌다. 집을 나섰다가 휴전선이 가로놓여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큰 체구에 성품은 온유하고 부지런했던 장인은 대전에 정착 후 재혼하여 딸 셋을 두었다. 그중 막내딸이 내 아내 미숙이다. 아내는 초등학교 일학년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유년시절 어머니를 잃은 아내는 그후 언니들 밑에서 가정 살림을 도맡아 했다. 처형들은 직장과 학교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의 살림을 아내에게 미루었다. 아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장인은 중풍이 걸렸다. 중풍에 걸린 장인은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큰 처형이 시집을 간 후에도 아내는 아버지를 돌보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나는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 하던 해 아내를 처음 만났다. 그때 아내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아내와 나는 늘 학교엘 같이 다녔다. 그리고 그녀가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할 무렵 장인의 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혼자서는 식사조차 못할 정도가 되었다. 아내와 나는 큰 처형 집에서 지내던 장인을 우리 집으로 모셔 왔다. 처형 내외가 맞벌이를 하여 몸이 불편한 장인을 보살피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십여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중풍으로 쓰러진 장인을 모시고 우리는 신혼을 보냈다. 아내는 날마다 더럽혀진 이불을 빨아야 했고 장인의 몸을 씻겨 드렸다. 그후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 다음에서야 비로소 아내는 생활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며칠전 아내가 서른 일곱 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이들은 내가 아내의 생일을 잊기라도 할까 걱정하여 몇번씩이나 다짐을 했다. 그 동안 아내의 생일이면 기껏 케익이나 사 들고 들어가 형식적인 축하를 했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이런 저런 생각끝에 미역국을 끓여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생일이 되어도 미역국을 먹지 못하였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찍 어머니를 잃고 그나마 가정 살림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아내의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 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결혼을 하여 십년이 지났으면서도 아내가 생일날 미역국을 먹지 못하였을 거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겨우 깨닫는 것은 그 동안 아내에게 너무 무심했던 탓이다.
마침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나는 장을 보러 나갔다. 집 가까운 곳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서 미역을 사고 쇠고기도 샀다. 쇠고기를 두 시간 남짓 끓인 후에 그것을 꺼내어 손으로 잘게 찢은 후 마늘과 후추 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불려 놓은 미역과 함께 고깃국물에 넣고 다시 한 시간 남짓 더 끓였다. 미역국이 끓는동안 구수한 냄새가 진동하고 아이들은 내 곁에서 신기한 눈빛으로 지켜 보았다. 나는 미역국이 끓고 있는 동안 설거지를 말끔히 하고 아내가 들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도 자기들 방에 케이크를 준비해 놓고 아내의 머리에 씌워줄 왕관도 만들어 놓았다. 식탁 위에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미역국이 놓였다.
그날 비록 미역국 한 그릇이 놓인 초라한 식탁이었지만 종이로 만든 왕관을 머리에 쓴 아내는 여왕이 되었고 나와 아이들은 그의 시종이 되었다. 그 날밤 아내는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 하였다. 자정이 지난 다음에서야 겨우 잠이 든 아내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를 만나 졸업하던 해 결혼을 하다보니 미팅 한 번 해본 일이 없는 아내다. 결혼하고서도 일흔이 넘은 노인을 세 분이나 모시며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신혼조차 느끼지 못하며 살았다. 아내의 얼굴에 잔주름이 눈에 띈다. 생기발랄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늘 명랑하고 활달하여 소녀 같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이 어느새 중년 여인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내의 목소리에는 유난히 생기가 넘쳐 흘렀다. 아이들은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은 처음 먹어 본다며 몇 그릇씩을 먹고 아내도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돌아오는 아내의 생일에는 미역국을 더 맛있게 끓여야겠다. 미역도 더 좋은 것으로 사고 고기도 몇 토막 더 넣어야 겠다. 미역국은 국물이 맛있어야 제격이다. 고기 국물이 푹 우러나도록 오래 끓여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것이다. 아내나 아이들에게 푹 끓인 미역국 같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