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아름에 가서 저녁 때울까? 개업 잔치를 이틀 한다고 했으니까 오늘도 공짜로 음식을 줄 거야.”
남편이 제안했다.
“어제는 창피해서 싫다더니 웬 일이예요?”
“당신 피곤해서 밥 하기 싫을 것 아냐.”
그래서 남편과 둘이 한아름 슈퍼에 갔다.
넓은 주차장에는 이미 차를 세울 곳이 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한참을 헤맨 끝에 간신히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 자리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오는 이, 가는 이 모두 한국말을 하는 한국 사람들이다.
이 순간 이 지역은 미국이 아니고 한국으로 느껴진다.
여기 저기 질서 유지를 위해 서 있는 미국인 경찰이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워싱턴 인근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대형 슈퍼 마켓이 여러 개 있다.
채소 값은 서양 슈퍼 마켓의 거의 반 값인 경우가 많아 채소와 과일을 즐기는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곳이다.
우리집 근처에 이런 업체중의 하나인 한아름이 개업하기로 했다는 광고는 그래서 반갑고 기쁜 소식이었다.
개업 첫날인 어제 그 곳은 그야말로 잔칫집이었다.
길게 늘어서 개업 기념으로 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 월드컵 응원 때 입었던 붉은 티셔츠를 입고 손뼉을 치며 손님을 부르는 점원, 가위며, 고무 장갑, 플라스틱 바구니, 콜라, 집
게 따위의 기념품을 나누어 주는 사람…
미국에 살면서 때론 한국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불편해도 그리울 때가 있다.
시끄럽다고 싫어했던 슈퍼마켓 점원의 손뼉치고 발 구르며 상품을 선전하는 소리가 반갑다..
몸이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도 남편과 그 속에 끼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큰 소리로 남편과 떠들었다.
“여보, 이것 보세요. 이 항아리는 좀 비싸지요? 워싱턴 백화점에 가면 반값인데…”
또는
“여보, 옥수수가 열 개에 1불이래요. 우리 많이 사갑시다.”
라든가.
점원들과 농담도 주고 받고, 장보기도 하고, 기념품도 받고 오랜만에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에 마치 친정 나들이를 한 기분이다.
채소며 과일 값이 공짜나 다름 없다.
열 댓 포기들이 배추 한 상자에 2.99달러, 무우 한 상자도 2.99달러, 감 한 상자에 3.99달러, 자몽 8개에 1달러…
배추 두 상자, 무우 한 상자를 사다 김치도 담그고, 동치미도 담갔다.
적은 돈을 들여 담근 김치와 동치미지만 큰 생색을 내며 나누어 줄 생각에 흐뭇하다.
지나 엄마도 주고, 쏘니아 엄마랑 에릭 엄마도 나누어 주고, 이웃에 사는 한국집도 주고…
받고 좋아할 얼굴들을 떠올리며 흐뭇해진다.
옆에서 김치 담그는 것을 거들었던 남편이 힘든 모양이다.
한아름에 가서 저녁을 해결하자고 하는 것을 보니…
한아름에 가서 줄을 섰다.
개업 기념으로 공짜로 주는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 생각도 들지만 재미도 있다.
접시 가득 담아주는 홍어회, 잡채, 돼지고기 수육, 만두, 떡을 받아 들고 한 쪽에 서서 먹었다.
개업 잔치에 몰려 든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이리 저리 눈치 보며 음식을 먹는 일이 불편하고 어색했던지 남편이 말했다.
“괜히 왔나 보다.”
“난 재미있기만 한데, 왜? 이렇게 음식 먹는 것도 재미 있잖아. 옛날 시골 잔칫집에 엄마 따라가서 얻어 먹는 것처럼…”
어제 실컷 장보기를 해서 더 이상 살 것도 없는 한아름에 오늘도 가서 남편과 나는 맛있는 공짜 저녁 식사를 하고, 경품권도 두 장이나 또 받고, 기념품도 또 받았다.
줄지어 선 음식점도 기웃거리고, 꽃, 액세서리, 건강식품, 화장품, 그릇, 밑반찬, 전자제품 파는 가게도 둘러 보면서, 미국 속의 한국을 만끽한 즐거운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