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온 지 이제 한 달
나는 애완견을 두 마리 키우고 있다.
이사하면서 염려가 되었던 것도
주인이 강아지를 싫어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었는데...
이사를 하고 보니 신기하게도
주인 집, 앞집, 그 앞집, 뒷집, 옆집...
전부 나처럼 강아지를
한 두마리 기르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처럼 눈치 볼 것도 없고
혹시 짖기라도 하면 다른 집에서
항의 전화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지내던 아파트에서의 날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도 여유가 있구만...
마당에 탐스럽게 달린 포도송이를 보면서,
시원하게 현관을 씻어 내리면서,
옥상에 빨래 탕탕 펴서 말리면서
내 마음도 한결 여유로와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제, 남편은 잠이 들고
나는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웹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새벽의 까만 어둠과 적막이 더 없이 좋았다.
순간...새벽의 적막을 깨고 들리는
여인의 다급한 소리...도둑이얏!..도..도둑이얏!!!
뒤이어 숨 넘어갈 듯 왈왈왈...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짖는 개소리
앞집 옆집에서 급하게 켜는 불빛들...
나는 깜짝 놀라 잠든 남편을 발로 걷어찼다.
여..여보...도..도둑이래...
잠시 눈을 뜬 남편,
어...하더니 다시 눈을 감고 잔다...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고 무심한 그의 성격에
워낙 단련이 되었기에 나는 혼자 창문을 열었다.
이층, 삼층으로 뺑뺑 둘러싸인 납작한 슬레트 집,
바로 우리 뒷집에 도둑이 든 모양이었다.
예외없이 그 집에서도 기르는 개-화이트 테리어는
어둠 속 어딘가를 향해 마구마구 짖어대고
이웃의 집집마다 밝힌 불은 오래도록 꺼지지 않았다.
비로소 나는 알았다.
개인 주택가에 왠 개들이 그렇게 많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역시나 무심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
어젯밤의 충격적인 일에 대해
정신없이 떠벌이는 내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듣다가 나의 수다가 다 끝난 뒤
그의 성품처럼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그럼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순전히 강아지가 귀여워서 기른다고 생각했어?...
.........
너무도 과묵한 남편은
언제나 결정적인 한마디로
나의 수다를 제압한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이건만 은근히
사람 약오르게 하는 수법이다.
말싸움을 포기하고 나는 새삼스런 눈길로
조막만한 우리의 강아지들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먹을거리를 두고 다투고
밤이면 누가 주인의 겨드랑이 밑을
잠자리로 차지하느냐로 다투는 강아지들을
이젠 우리 가정의 지킴이로 삼아야 하다니...
출장이 잦은 남편이 새삼 밉게 보인다.
그래도 남의 집에는 한마리 있는 강아지가
우리 집은 두마리 있으니 더 든든하겠지?
아침이면 이집 저집에서 얼굴을 불쑥불쑥
내미는 견공들의 존재 이유에 경의를 보내며
이 더운 날에도 나는 현관문을 닫아 걸고
글을 쓴다.
그래도 나는 무섭지 않다...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두마리나 있다...
우리 집엔 절대로 도둑이 못들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