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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90

멍청이


BY ooyyssa 2002-11-29


'멍청이'라는 고기가 있다.
그 이름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이 고기는 아마도'다랑어' 종류일것이다.

모슬포, 이곳에는 지금 축제로 유명해진 '방어'잡이가 한창이다.
방어나 부시리는 회로 먹기에 적당하다. 그리고 회를 떠낸
머리와 뼈는 매운탕이나 신 김치를 넣은 김치찌개도 좋고
맑은 국물로 끓여 놓아도 '국물이 끝내'준다.
또 이곳에는 그 유명한 옥돔과 은갈치도 있다.
그외에도 마라도 부근에는 갯돔이니 벵어돔과 같은 돔종류와
다금바리등 소위 고급어종이 많이 잡힌다.

이런 격있는 고기와 비교해서 '멍청이'가 '멍청이'인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횟감으로 쓰기에도 반찬으로 쓰기에도 적당하지 않으니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순간부터 '에이, 멍청이!'하며
배 위에 내동댕이 치거나 땅위로 가지고 온다해도 시장에
내다 팔기는 커녕 냉동실 구석에 쳐박아 두었다 묵어지면
다시 버려지는 신세가 된다.

며칠전 남편이 이 '멍청이'를 잡아와서 툭 던졌다.
"에이, 올라오라는 방어는 안 올라오고 이 멍청이때문에 낚시줄만
다 끊어졌어......"

잡아온 고기를 버릴 수가 없어 칼을 들고 보니, 이 '멍청이'란 녀석이 결코 멍청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모양새는 방어와 비슷하고 색깔은, 방어가 맑은 날의 바다 같은 색이라면 멍청이의 색은 비가 쏟아질듯한 날 그것도 수평선 근처의 바다색이었고, 바닷 속을 누벼서 헤엄쳐 다녔을 탄탄해 뵈는 뱃살.......

남편에게 정말 이 고기는 다른 고기에 비해 맛이 없느냐, 국물 맛은 어떠냐, 너무 아깝다며 우리가 너무 박대하는게 아닐까하여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는 가게 안에서 오뎅을 끓여 팔고 있다.
이것을 넣고 국물을 끓여보기로 했다.
고기를 잘라내어 끓는 물에 살짝 삶은 후, 햇빛에 말렸다가
멸치대신 넣어서 다시마,양파.대파 혹시
비린내가 날지 모르니까 마늘 몇쪽 그리고 무를 넣고 푹- .

다음날, 국물맛이 좋다며 호호- 불며 마시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했다.
어제도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몰려와 오뎅을 먹고, 그 국물에
라면까지 끓여달래서 끓여 줬더니,'생애 최고의 라면'운운했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멍청이' 좀 잡아다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까지 한다.
내게 있어 '멍청이'는 더 이상 '멍청이'가 아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제 쓸모에 쓰이지 못하면 멍청이가 된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있을까.
'멍청이'의 숨겨진 국물맛처럼.

지금 가스버너 위에선 '멍청이'의 구수한 국물이 뜨겁게 끓고 있다.



****답글 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시쓰는 방에서는 누군가 읽고간 흔적이 숫자로만 남더니,
이제 이맛에 쟝르를 바꿔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