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토란에 물을 주고 집에 왔다. 봄에 텃밭에 심고 남아서 화분에 심은 토란이 한창 예쁘게 자라고 있다. 장마 전에 유기질 비료를 주었더니 장마와 함께 영양분을 섭취해서 까만 빛이 나도록 자랐다. 그런데 어제 아침까지도 괜찮았었는데 퇴근 전 돌아보니 잎이 오그라질 정도로 말라버렸다. 아, 이것을 어쩌면 좋아! 토란은 잎이 아주 보기가 좋은데 한번 피해를 입으면 잎이 망가져 버린다. 하지만 어쩌랴. 물을 주고 내일 일요일이라서 돌볼 수 없기에 그늘 쪽으로 옮겨놓고 왔다.
나는 고향이 시골이다. 충남하고도 부여 은산이다. 은산 별신제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셨고 나도 이런 저런 농사일은 다 해보고 자랐다. 지금도 그 시절을 돌아보면 농사일이 어려웠지만 지금 내가 꽃을 가꾸고 정원을 돌보는 일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것이 어렸을 적에 농사일을 해 봐서 그렇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이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서 반찬으로 했던 기억이 난다. 오이, 가지, 상추, 완두콩, 호박, 머위, 쑥갓, 아욱, 토란... 그 중에서도 오이 밭을 제일 드나들었다. 왜냐면 아침에 오이를 따먹느라고 오이 덩굴을 열심히 뒤졌다. 그리고 가지도 어린것은 달콤하고 해서 자주 따먹었었다.
오이 밭을 가노라면 토란도 보게되는데 새파랗고 커다란 잎이 아주 시원시원했다. 그런데 그 잎보다도 나를 끌리게 한 점은 잎에 구르는 물방울이 정말 신기했었다. 모든 식물은 물이 떨어지면 잎에 배이게 되는데 이 토란은 잎위에 물방울이 동글동글하게 구르는 것이다. 물방울 색깔도 은백색으로 참으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동생과 같이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 일부러 부어 보는 장난도 했었다. 그러면 수많은 은구슬이 토란잎을 데구르르 굴러가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 때의 그 신기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재불 화가 김창열씨의 물방울 그림은 정말 실제의 물방울을 떨어뜨려 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두 가지 물방울은 서로 성격이 다른 물방울이어서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하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식물인 토란잎에 실제의 물방울이 구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가 오랜 세월동안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서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낸 인공의 물방울이다. 그래도 어렸을 적에 내가 보았던 토란잎 위에 구르던 은백색의 물방울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값진 진주가 그보다 더 아름다우랴!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야산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 야산에는 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산비탈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어서 지금도 조금씩 심고 있다. 나도 가끔 산책을 가면 정성스레 심은 여러 가지 채소를 보게된다. 그런데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토란이다. 잎이 시원하고 보기가 좋다. 정말 아름답다. 물론 심은 사람들은 식용으로 심었겠지. 추석 무렵이면 그 잎이 정말 한 아름이 되고 키도 내 키를 훨씬 더 웃돈다.
작년에는 산책을 하다가 토란이 너무 아름다워서 토란 밭 주인에게 정원에 심으려고 하니 몇 그루 팔으라고 했다. 그러나 팔지는 않고 한 그루 주겠다면 제일 조그만 것을 하나 주었다. 그런데 이미 자란 상태여서 옮겨 심으니 몸살을 하고 시들어서 잘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내년에는 내가 직접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석이 지나고 토란을 수확할 무렵에 동네에서 토란을 사서 보일러실에 보관했다가 올 봄에 직장의 텃밭에 정성들여 심었다. 그런데 올 봄의 가뭄이 너무 심해서 나오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물을 주고 하니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세상일 모두가 그렇겠지만 뭐든지 정성을 드리지 않으면 되지를 않는 것을 깨달았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해본 경험을 살려 직접 땅을 파고 둑을 만들어 하나하나 심었다. 많은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나 혼자 할 수 있다. 심으면서 토란이 나왔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 가를 상상하면서 심으면 힘도 들지 않고 재미가 있다. 또 파란 잎을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 아닌가. 나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 아닌가.
지금 토란을 심은 자리는 향나무와 노간주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는 공터였다. 그래서 버려진 땅처럼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정문 바로 옆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된다. 즉 삭막한 모습을 아침저녁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다 꽃을 심으면 한결 보기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작년에는 내가 해바라기를 심었었다. 동네에서 해바라기를 얻어다가 심었는데 잘 자랐다. 그래서 여름에는 해바라기 꽃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올해에는 토란을 가꾸려고 하는데 마땅히 심을 데가 없어 해바라기 대신에 토란을 심었다.
작년에 해바라기를 심을 때도 몇 사람이 그곳은 토양이 마사토이고 메말라서 식물이 잘 자라지 않을 테니 심지 말라고 말렸다. 그런데 나는 꽃을 심으면서 잘 될걸로 상상을 한다. 그리고 정성껏 물도 주고 풀도 뽑아주고 거름도 준다. 동네에서 산에 가면 나뭇잎이 쌓여서 썩은 부엽토가 많다. 그것을 모아다가 주니 해바라기가 내 키의 두배는 되게 자랐다. 올해에도 같은 장소에 토란을 심는데 많은 사람이 토란은 습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잘 되지 않을 거라고 비관적으로 말을 했다.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모래땅 사막에도 물을 끌어대면 옥토가 되는데 이곳은 그보다는 낫지 않은가.
토란을 심고 아침저녁으로 돌아보고 물을 주고 또 유기질 비료를 사서 주니 지금은 모두들 보고 감탄을 한다. 토란잎이 파랗다 못해 새까맣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토란을 내 키의 두 배 정도로 키울 생각이다. 그러면 울창한 푸른 숲을 이룰 것이고 그것을 보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하고 즐거울 것인가. 상상만 해도 벌써 즐겁다.
작년에 토란을 가꾸는 동네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로는 토란은 추석 무렵부터 수확을 해서 뿌리는여러 가지 음식을 해서 먹고 토란 대는 말렸다가 육계장 등에 넣어서 먹는다고 했다. 같이 근무하는 직장 사람들도 벌써부터 언제 토란을 캘 것이냐고 묻곤 한다. 그런데 나는 토란을 심을 때 잎이 아름다워서 심은 것이지 뿌리나 대를 먹을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먹는 미각보다는 보는 시각이 한 차원 높은 감각이 아닌가.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으니 사람에 따라서는 먹는 것이 더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
나는 요즘에 토란을 키우는 재미로 살아간다. 사람이 뭔가에 몰두할 수 있고 즐기는 일이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가볍게 운동을 하고 다음에는 내가 가꾸고 있는 정원을 둘러본다. 그리고 토란밭을 둘러보고 토란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뭔가 부족한 것이 없나를 살펴본다. 즉 물이 부족한가, 영양이 부족한가 보고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한다. 물론 퇴근하면서도 한 번 살펴보고 온다. 어제도 일요일에 볼 수 없으니 물이 부족할 것 같아 물을 뿌리고 왔다. 물을 뿌리면 수많은 은빛 진주구슬이 토란잎 위에 흘러내린다.
올 여름에는 토란의 짙푸른 숲을 볼 수 있겠지. 그 싱싱한 푸르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