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모두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더니 그래서 인지 남편과 결혼하고 난 후 이사를 많이 다녔다.
한 달 전 또 이사를 했다.
스물 세 번 째 집으로…
독일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삼 십 이 년을 살았던 집이다.
집을 아끼고 가꾼 흔적은 곳곳에 보이지만 값비싼 자재를 이용해 화려하게 꾸민 집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살았던 그 어떤 집보다 마음에 든다.
세 갈래로 갈라진 길 모퉁이에 지어진 집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부엌 창문을 통해 나는 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옆 집 아들이 친구 다섯 명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사한 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조그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뚱뚱한 아줌마가 오늘도 산책 길에 나섰음을, 뒷집 꼬마가 맨발에 까만 원피스 차림으로 추위도 잊고 모아놓은 낙엽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음을…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면서 나는 안다.
앞집 할아버지가 추수 감사절을 맞아 방문한 아들과 골프장에 다녀왔음을, 그 옆집엔 여자 혼자서 낙엽을 치우고 있음을, 뒤늦게 얻은 아들 손 잡고 송아지 만한 개를 앞세우고 산책 길에 나선 또 다른 옆집 부부는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다는 것도...
이렇게 잘 알 수 있는 게 신기할 만큼 집 안에 있어도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저절로 알 수 있다.
이사 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마을 사람들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인 것 같은 느낌 마저 든다.
집 안에 혼자 있으면서 자칫하면 느끼기 쉬운 갇혀 있는 느낌하고는 거리가 멀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면 이웃들도 기지개 켜고 일어나 나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아 절로 기분이 상쾌하다.
결혼하고 나서도 우리집하면 떠오르는 것은 언제나 태어나서 결혼 전 까지 살았던 시골집이었다.
아버지가 눈 밝고 귀 밝다고 자랑스러워 하던 집이었다.
집에 있어도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 수 있다고 아버지는 그 집이 좋은 집이라고 하였다.
어린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집은 있는 것이었고 그 집은 그저 내가 사는 집이라고 생각했을 뿐…
결혼하고 나서 유난히 시골집을 그리워했다.
그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시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도 그 집을 찾아갔었다.
우리 가족 누구도 그 집에서 살고 있지 않았지만 그냥 집이 보고 싶어서…
그 집이 마치 나를 반겨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집은 날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전혀 낯 선 모습을 하고 그 곳에 서 있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집을 보고 나도 모르게 목이 메이고 눈물이 났다.
눈물이 흔한 사람도 아니건만 그 집은 날 울리고 아프게 하였다.
그 후 난 우리집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있었지만 그 집은 우리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살았던 시골집처럼 정이 들지 않았다.
워낙 자주 이사를 다녀서 집에 정들 사이가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의 말에 ‘하하하..’웃는 내 웃음소리가 내 귀에 낯설만큼 명랑하게 울린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부쩍 그런 느낌이 든다.
유난히 명랑한 웃음을 자주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잊었던 기억을 하나 생각해 낸다.
‘그래, 난 무척 잘 웃는 사람이었었는데…’
같이 찍은 사진을 보고 친구는 감탄을 했었다.
“어머, 이 웃는 모습 좀 봐!”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말했었다.
“에이, 선생님은 너무 잘 웃어요.”
동료 교사가 말했었다.
“강 선생 웃음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이제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더 이상 아무도 그런 말을 내게 해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예전의 웃음을 잊고 살았나 보다.
내 귀가 내 웃음소리를 낯설어 할 만큼…
‘그런데 왜 내가 다시 웃게 되었지?’
혹시,
억지 같지만 혹시,
웃음과 집이 강한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남편과 결혼한 후 숱하게 이사를 다니며 이런저런 집에서 살아 보았지만 그 어떤 집도 우리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살았던 기간이나 소유권에 상관없이 우리집이라는 느낌이 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그러나 이 집은 달랐다.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맘이 끌렸다.
이사하던 날부터 이 집이 우리집이라는 사실이 맘에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집에 내가 누워 있음이 기분 좋다.
혹시,
이게 바로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하던 눈 밝고 귀 밝은 집의 힘일까?
이사 한 지 한 달,
날마다 정이 더해가는 집에 살면서 눈 밝고 귀 밝은 집이 정말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