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
서른살 남짓 되어 보이는 그 청년의 한쪽 눈썹은 하얗게 물들어 있어 우리 아이들이 보고는 무섭다고 내 뒤로 숨어 버린다.
내가 그 청년을 본날은 이곳 대전으로 이사온 첫날이다.
그러고 보니 십육년을 살면서 열번 넘게 이사한 것 모두 남편없이 혼자 하는일이 되고 말았다.
이사하는데는 선수였는줄 알았는데 그도 아닌 모양이다.
이번의 이사는 웬지 서글프고 서럽기 그지 없었다.
사람마음이 간사하기 이루 말할수 없는 건지 예전에는 사람 품값이 아까워 같이 들어 나르고 했는데 이번만큼은 오기를 부려보고 싶어 남들처럼 해보고 싶었다
"기사아저씨외 두분 아저씨 더 보내주세요. 여기는 짐 나를 사람 없으니까요."
내 옥탑방 아래층 "장미원" 커피숍에 앉아 이삿짐 나르는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항상 냉장고 였다.
이놈이 덩치가 커 이사할때마다 매번 애를 먹였는데 냉장고에 사연이 있다.
예전 집이 경매에 넘어갈때 남편은 내가 없을때 세탁기와 냉장고를 팔았다.
손때가 묻은 물건을 다른사람손에 넘긴다는 것... 참담한 슬픔이였다.
그 다음해 지독히도 무덥던 여름날.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대형 냉장고가 상품으로 나와있는 수필공모가 눈에 띄여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목숨처럼 원고지 십오매를 채웠다.
간절한 바램처럼 커다란 냉장고 한대가 입상소식과 함께 돌아왔고 방안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냉장고
그 냉장고를 마지막으로 들어나르던 인부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사층계단이 낮아 냉장고가 못들어가니까 젊은 사람 한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장미원" 커피숍을 나오다가 집근처에서 만난 그 청년.
황량함이 넘쳐 장마끝에 휩쓰려간 폐가의 모습처럼 정리되지 않은 얼굴..
하얀눈썹 한쪽이 몹시 위태하게 느껴져 두려움 뒤로 한발자국 물러서야 할듯한 기분에 몸을 숨기다 그만 눈이 마주쳤다.
"저기.. 바쁘지 않으시면 잠시 일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렇게 해서 그 한쪽 눈썹이 흰 청년은 단걸음에 우리 옥탑방 끝까지올라가 냉장고를 제자리 잡게 해주고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 아침 빨래를 널고 있는데 한집을 사이에 두고 넘어가는 우리집 높이의 맞은편 건너집.
옥탑방에서 그 청년이 나왔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간단한 목례로 대신하고 휭하니 사라진다.
뒤따라 나오는 상냥한 아가씨.
난 목소리가 높여지지 않아 양손을 입에 모으고 "우리집에 차 한잔 마시러 와요"하고 소리치자 그녀는 "네에."하면서 건너왔다.
차를 내놓으면서"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한쪽 눈썹 염색하는게 유행인가 보지요?
이왕이면 산신령같이 두쪽을 다 하지...ㅎㅎㅎ"했더니
그녀는"우리 현이씨는요. 어려서 부터 병이 있었어요. 간질병요.. 아시지요? 그게 어떤병인지..."
잠시 숨을 멎었다.
괜한 얘기를 했나보구나..하는.. 심정으로.
비오는날 발병되면.. 진흙탕속에서 어떤모습으로 뒹굴고 있는지... 버스안에서 발병되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그려지세요? 저는 그 생각만 하면 우리 현이씨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다 미어져서 살고 싶지 않을만큼 슬퍼요."하루는 동네 어른이 우리 현이씨가 지나가는데 뒷산 약수터 뒤 바위쪽으로 약초가 있는데 그 약초를 먹으면 간질병이 낫는다고 했데요. 우리 현이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학교도 안가고 바위뒤쪽으로 있는 그 약초를 뜯으러 갔는데 무엇인지 잘 모르겠데요. 그래서 비슷한 풀은 죄다 뜯어서 먹었데요.
그 병만 낫게 한다면 못할게 아무것도 없었대요 그런데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우리 현이씨 그자리에서 쓰러져 삼일만에 깨어 났대요. 깨어나고 보니 눈썹 한쪽이 하얗게 되어 있더래요. 우리 현이씨 부모님. 이상하게 현이씨 혼자힘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기거할곳이 없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석달을 보냈대지요.
그후로 두동생 대학진학을 현이씨가 있는 학교로 오면서 현이씨가 생활비 대고 단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하고 일하면서 동생들 졸업시켰다지요.
지금은 현이씨는 내사업을 훌륭하게 잘해내고 있어요.
우리 현이씨 동생들이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존경하냐고 하면 둘다 우리 현이씨래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부모님한테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구요.
우리 현이씨. 참 자상해요. 한결같아요. 모든일에 최선을 다해요.
현이씨 같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요. 감사하구요.
아... 듣고 있는 나도 참 좋으네요.
그 부모님한테도 감사해야 겠네요.
훌륭한 신랑 낳아준 부모님이니까요.
그녀는 "후후.. 그건 그러네요..."
그남자
한쪽 눈썹이 희여서 아이들이 무서워 내 등뒤로 숨어버리는 그 남자
사는게 참 힘들었을 그남자..오늘 그남자의 생일이라 했다.
노란 후리지아 한다발 ..그들의 옥탑방앞에 놓고 돌아서면서 나는 내자신에게 물었다.
“아직도 네게 희망이라는게 남아있니?...”
“응...하고 대답했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기대인가...“응”이라니...너는 어쩌면 지치지도 ,.쓰러지지도 않을까...
그렇치만 나는 아직도 희망에게 “응,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절대로.. 내 생전에는 ”
힘차게 대답하며 뛰어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