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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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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만남


BY 쟈스민 2001-06-25

며칠전엔 저의 집에서 반상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퇴근 후 분주히 저녁을 먹고, 과일이랑, 음료수랑, 생과자 등을

챙겨 얌전히 상을 차렸습니다.

예쁜 접시를 꺼내고, 아끼던 유리 잔도 꺼냈습니다.

늘 그렇지만, 자신이 사는 공간에 누군가가 온다고 하면

그녀는 며칠전부터 으레 바쁘기만 합니다.

하루는 베란다 청소에 열을 올리고,

또 하루는 거실이며, 방 정리에....

또 하루는 현관 정리에 온 신경을 씁니다.

올 사람이 친구든, 이웃이든, 시부모님들이든

그녀는 왠지 누군가에게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길 무척 싫어하지요

그건 그녀의 지나친 가식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삶의 한 구석은 그저 혼자만의 비밀로 해 두어도 좋으리란

생각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누구네 집엘 가든지 화장실이 깨끗하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고,

현관이 깨끗한 집엘 가면, 나도 그러해야지 하며 늘 부러워하곤 하지요.

향긋한 꽃 한다발 꽂아 두고, 베란다의 식물들도 가장 돋보이는 자리를 찾아 줍니다.

산뜻한 레몬향이 나는 세제로 욕실도 깨끗이 닦고, 장미향 포푸리도

가만히 놓아둡니다.


반짝 반짝 그녀의 사는 공간이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의 남편은 맨날 우리집에서 반상회 했으면 좋겠다.

평소에도 깨끗한 집이 이렇게 더 깨끗하다니....

하며 감탄사를 늘어 놓더군요.

드디어 정다운 이웃들이 하나 둘 얼굴을 마주 하고 앉았습니다.

아파트 관리에 대한 이야기, 부녀회 이야기 , 아이들 이야기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가 무르익어 시간은 열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인사인지, 칭찬인지 그네들은 한결같이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어쩜

집을 이리도 깔끔하고 예쁘게 꾸몄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스개 소리로 그녀는 "피나는 노력을 했죠"라며 말하였지만

가슴한켠에는 며칠전부터 청소에 열을 올렸던 자신이 좀 부끄럽기도

하여 웃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어쩌면 그런 작은 노력이 모여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달 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재빨리 알아버린 건지

늘 누군가가 집에 온다 치면 그리 바빠진답니다.

하지만 우린 누구나 살면서 다른 이들에게 두 얼굴을 하고 좋은 모습

만 보이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해봅니다.

그것이 가식이라고 이야기해도 할 말은 없지만

왠지 그리 살아야만 될 것 같이 자꾸만 자신을 채찍질해 가는 삶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는 때문에 어쩔수가 없습니다.

이웃들과의 모임이 있은 날 그 후부터 엘리베이터에서 무심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던 이웃들도 좀더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눈인사에서 그 보다 더 깊은 마음의 인사까지, 한번 놀러 오겠다는

말까지 하는 걸 보면 처음 말문을 트는 게 어렵지, 이웃은 이웃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자꾸 이야기하고 싶고, 넉두리 하고 싶은 삶의 한켠에서

아.컴의 에세이방은 늘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우리의 정다운 이웃들처럼 늘 그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 수더분한 이야기 보따리가 자꾸만 풀고 싶어지는 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