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에 대하여>
초등학교 시절 나는 별로 말이 없고 그저 공부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육상을 했다.
그 시절 나는 다른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성숙한데다
순발력이 강해서 단거리를 제법 잘 뛰어 운동회 때면
각종 대표로 나가서 달렸고 상도 아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실력과는 달리 난 육상을 아주 싫어했다.
방과 후와 방학 때에도 학교에 나와서 연습을 한다는
게 무척이나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잘 달린다해도, 출발선에 서 있을 때의
그 떨려서 두근거리는 마음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가
없었다.
5학년 여름 방학, 나는 운동 연습이 하기 싫어서 군에서
시합이 있는 줄도 모르고 결혼해서 경기도 구리에 살고
있는 언니네를 갔다.
육상 연습이 싫어서 피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날 찾고 난리가 났었는데 통신시설이 발달되
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내가 연락을 받고 집으로 내려
왔을 때는 시합 바로 전날이었고 결국 시합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나는 전교생 앞에서 체육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으로부터 얼마나 혼이 났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체육선생님은 운동장에서 내가 달리기 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그냥 안 놔두겠다고 엄포까지
하셨다.
교무실과 숙직실 청소까지 벌로 받아 해야했는데
선생님과 마주쳐도 선생님은 아는 체를 안 하셨다.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수업시간에도 선생님을 쳐다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책상위만 쳐다보고 있었다.
참으로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가을 운동회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날 부르셨다.
그러면서 "내가 졌다. 이번 가을 운동회때는 꼭 달려라"
하셨다.
그리고 가정 방문을 오셨던 선생님의 말을 얼핏 들었는데
"베티의 고집이 보통이 아닙니다. 제가 졌습니다"
하시는 게 아닌가.
체육 선생님도 결국은 먼저 화를 푸시고 내게 다가오셨
는데 정말 그 때는 고집이 셌나보다.
그런데 요즘의 난 그 고집이 어디 갔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남편과 싸움을 하고 나서도 뒤돌아서면 미안해서 내가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아니다 싶으면서도 허락을 하고 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한가지 일을 오래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시작은 잘 하지만
꾸준히 하지는 못한다.
만약 내게 고집이 있었다면 지금쯤은 뭔가를 이루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것 보면 고집이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이 말하신 그 고집은 고집이
아니라 수줍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