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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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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BY 이선화 2000-10-24


1999.9.22

나는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하물며 시장을 보러
가서까지도 자주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런지 늘 오가는 길도 가끔 내겐 낯설다

누가 지리를 물어보면 꼬집어 서명하지도 못할만큼 주변
환경들이나 건물에 대해 별 관심 없이 사는편이다
그리고 시장을 보고도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오기가 일쑤다

그러니 길 눈도 어둡고
어벙하다고 자주 핀잔도 듣는다

물론 아주 가끔은 상황이 그러해서겠지만
세심하고 완벽하게 일을 해 칭찬을 받는다거나
부러움을 사는일도 있긴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난 항상 넋을 놓고 사는 사람 같다는 소릴
자주 듣는편이다

어머니께서는 아직 젊디 젊은것이 하시며 곧잘 혀를
차시곤한다
어른들께서 보시기엔 못 미더우신게 당연한일이다


그런 내가 오늘 큰 아이 운동회에 다녀왔다
가서 열심히 응원을 하고 사람들과 웃으며 얘길 나누면서도
종종 하늘을 올려다본다거나 먼 산 허리를 본다거나
그러면서 산만함을 감추지 못했으니
반나절이 넘는 시간을 인파속을 헤집으며 보낸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금방 피로감을 느꼈다.

아이는 달리기에서 첨으로 3등을 했다고 좋아했다
내가 보기에도 큰 아인 운동신경은 무딘것 같다.
누가봐도 이건 뽀야니 야리야리한게 도련님 모습이다
뛰어 노는것보단 그냥 앉아서 요것조것 만지작 대며
어느 하나에 몰입을 하거나 아니면 늘 습관처럼 책을
보고있다

책을 보다가 새롭거나 놀라운 내용이 있으면
그때부턴 아예 엄말 졸졸 따라다니며 일도 못하게 만든다

귀가 따갑지만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엄마 된 죄니..

그런데 작은아이..
작은 아인 한마디로 터프가이다
친구랑 놀다가 싸움이 붙어 결국은 친구 코피까지
낸 전적도 있으니 말 그대로 못말리는 개구쟁이인 셈이다

지형은 작은 아이만 할때 친구랑 놀다가도
장난감으로 부딪힐 일 생기면 슬그머니
다 밀어내줘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어쩌다 무서운 강적을 만나면
쪼르르 달려와 엄마 치맛자락만 잡고 늘어졌었는데
작은 아인 지형땜에 은근히 속상했던 엄마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여전히 골목대장 노릇을 한다

이제 여섯살 박이가
키랑 몸집은 초등학생 2학년 이라해도 믿을 정도니
저절로 파워가 생길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막내라 그런지 얼굴은 애기 티가 졸졸 흐르는것이
귀엽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아이 볼을 꼬집거나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그것도 모자라 "음~ 이뻐라" 하면서 내 두 입술을 안으로 다물고
깨물다보면 종종 입안에 옴팍하니 홈이 생기곤 한다

오늘 달리기 출발선에 서면 가슴이 콩콩 뛴다는
큰 아이의 말을 듣고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인생에 있어서 저렇게 가슴 조이고 초조해하며
속 타 해야할 시간들이 앞으로 수도 없이 많을거란걸
저 아이가 알리 없는데....
아주 잠깐이지만 착잡해지는 마음 어쩔수가 없었다

그러나 삶이란것이 미리 당겨서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그 짐이 감해지는것이 아님을 모르지 않는 나로선
이내 모든 생각 훌훌 털어버리고 아이들의 함성에 떠밀려
어릴적 내 운동회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아래
청군 백군 깃발 휘날리던 운동장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