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가을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아이 학교에 개교기념일이 낀 이틀간의 휴가가 생겨서
작년 가을에 다녀왔던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미천골엘 다녀 올수가 있었지요.
그 유명하다는 내장산의 단풍구경도 못해본 제가
어찌 우리 산하의 가장 아름다운 단풍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수 있겠습니까만..
한적하고도 갖가지 잡목들이 가장 고운 색으로 가을을
보여주는 곳이 아마도 그곳 미천골의 단풍이 그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가운데
비까지 내려서 마음이 한정없이 가라 앉더군요.
추위에 지나치게 약한 내가 미리부터 걱정스러웠는데
여행내내 정말 너무 추워서 단풍든 아름다운 산을 감상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뭐 그까짓 추위로 그리 극성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속내의 까지 챙겨 입혔는데도 이를 달달
떨어댈 정도였으니까요..
어쨌든, 강원도 산골의 단풍은 지금이 한창입디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지난주 후반부 부터 단풍이 가장
절정이었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산을 올라갈수록 머리가 듬성듬성 빠진
아저씨 처럼 나뭇잎을 떨군 가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더 많이
보이더군요. 그래도 아래쪽엔 이제 막 빛고운 가을빛들이
한창 뽐을 내고 있어서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붉다못해
불이 타오를 듯한 빨간단풍과 그 빛고운 노랑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샛노란 단풍이 우리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더군요. 한발짝 산속으로 들어갈때마다 색다른 모습의 가을산이
눈앞에 펼쳐져서 각가지 아름다움을 뽐내는데,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인제에 들어서서 방태산휴양림에 도착했을때만 해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추웠었는데
우산을 받치고 숲길을 걷는 동안 떨어진 나뭇잎이
낙엽냄새를 진하게 풍겨내고 있었고 단풍빛깔은 더욱 선명하게
보여서 비를 맞으며 숲을 걷는 것도 나름대로 멋이 있더군요.
다행히 작은 오두막에 들러 점심을 먹으려는 시각에 맞춰
비가 그쳤습니다. 갑자기 숲이 밝아졌고 우리들 마음도 따라서
밝아진 느낌이 들어서 그순간 부터 진짜 여행기분이 들기
시작했던것 같습니다. 햇살이 비춰들기 시작한 숲속의 빈터에서
해먹는 밥맛은 정말 꿀맛이더군요. 집에선 밥을 안먹으려고 해서
저를 속상하게 하던 아이들도 밥한그릇을 뚝딱 비우며
밥이 너무 맛있답니다.
진동리 계곡에 들어섰을땐 오후 해가 설핏 기울고 있었지요.
날은 여전히 추웠고, '쇠나들이'라는 곳에 들어 섰을땐
그 바람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그곳에 바람이 그렇게
많다지요.. 그래서 소가 날아갈 바람이란 뜻의 '쇠나들이'라니
과연 바람이 너무 불어서 억새밭이 예뻐 사진을 한장 찍을려고
차를 내렸다가 곧 들어와야 했었으니까요...
진동리계곡의 단풍도 한창이었습니다. 주변이
한창 개발붐이어서 그 고운 단풍든 산과는 안어울리게
소란스럽고 지저분했지만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위로는 갖가지 고운 단풍든 산을
이고 있는 작은 산마을이라도 마주 할라치면 마음이 한없이
포근해 지곤 했습니다.
애초의 계획대로 불바라기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기위해선
부지런히 서둘러야 했으나 인제에서 양양 쪽으로 발길을
돌린건 저녁 나절 무렵이었습니다.
강원도의 어딜가나 산새가 우람해서 한창 단풍철인
지금이야 어디서고 단풍을 볼수가 있었지만 미천골의 단풍을
아침햇살로 보아야 했으니 길을 서둘러야 했어요.
그런데 도로는 지나가는 차가 그리울 정도로 사람들이 없어서
한적하기 이를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아이들 아빠가 심심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양양까지 가는 길이라야 마냥 구불구불한 산길이고 보면
더욱 지겹웠을 법한데, 미천골계곡의 단풍을 누구보다
보고 싶어하던 그이였던 지라 잠들어 버린 마누라 타박도
않고 묵묵히 차를 몰았더랍니다.
불바라기 산장에 들어서니 진돗개 한마리가 짖으며
우릴 맞아 주었지요. 계곡물소리가 우렁차고 흐리날이었지만
청명한 가운데 구름사이로 별이 몇개 보이던 산장은
산속의 집의 분위기를 잘 살린 예쁜 집이었습니다.
너무 추웠던 지라 따뜻하고 쾌적한 가정적인 분위기가 나는
그곳이 담박에 맘에 들었습니다.
문을 열면 갖가지 자연음과 어울리던 단풍든 산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올것 만 같은 그런 방에서의 하룻밤은
아늑하고 편안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불바라기 약수터까지 갈려면
조금 서둘러야 했지요. 어른걸음으로 왕복 3시간 이라더군요.
아이둘 데리고 갔다 와보니 5시간이 걸려 있었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 펼쳐진 산빛에 감탄을 하느라 시간이 어찌 가는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오히려 저보다
기운차 보였습니다. 예상외로 말이지요.
노랑나비를 발견해서 나비를 따라다니다
길가에 떨어진 단풍잎을 줍다, 들꽃을 구경하다가
가는 길은 여러가지 재미와 볼거리를 그것도 천연의것들을
펼쳐 주었습니다.
왕복 3시간을 완전히 무시하고, 유난히 붉은색이 고운 단풍앞에서
사진을 찍고, 노란산국 한송일 꺽어 들고, 민들레 홀씨를 후, 불어
날리며 골짜기를 돌아서다 보면 새롭게 펼쳐진 풍경에 감탄도 하며
천천히 걸어 올라 갔습니다.
미천골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아이들 걷기에도 그리
험하진 않았지만 불바라기약수터 가는 길은 쉽지가 않더군요.
그 천연의 샘은 사람들로 부터 더 깊이 숨고 싶었던가 보았지요.
작은 소롯길을 따라 계곡을 지그재그로 건너고
황룡청룡 두 폭포 사이에 작은 샘에서 쫄쫄 흐르고 있다고
하였어요.
계곡앞까지 가다가 멈춰씁니다. 계곡물 건너는게 장난이
아니었거든요. 그냥 소롯길이 그대로 이어졌으면 어떻게든
가보았을 텐데 아빠 혼자 계곡을 따라 올라간 사이 아이들과
저는 할일없이 나뭇잎을 모아 계곡에 띄우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나중엔 두녀석이 경쟁이 붙어 누구 나뭇잎배가
빨리 떠내려 가나 시합을 하기도 했지만 산골의 늦가을 추위는
상상외로 세찼으므로 아이들 볼과 손이 빨갛게 얼어
버려서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었지요.
아빠는 가져간 배낭에 철분과 미네랄이라던가요,, 뭐 특별한
성분이 들어 있어서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던
약수를 결국 떠와서 계곡에 쪼그리고 앉아 아빨 기다리던 아이들과
저에게 약숫물을 건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떠온 약수 건만 그맛은 정말 아니었습니다.
저도 아이들도 그냥 뱉고 말았는데요,,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한들
맛이 그리 없어서 한입도 못 마시고 말아서 고생하며 떠온 약수를
자랑스럽게 내민 아빠한테 미안하기 까지 했습니다만..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내려오는 동안엔 잠시 따뜻한 볕이 비추었습니다.
그런걸 '인디안 썸머'라고 부른다던가요..
따뜻한 햇살이 비춰들면서 비로소 단풍이 제빛을 맘껏
뽐내는 듯 했습니다.
그냥 붉은 색이 아닌, 그냥 노랑이 아닌
가장 고운 빨강과 샛노랑빛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라니요....
하루를 그렇게 단풍든 산을 바라봐서 인지 눈을 감아도
산빛이 감은 눈속으로도 따라왔습니다.
아이 숙제도 있고 해서 한장 두장 모은 단풍잎은
어느새 배낭 한쪽 주머니에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사이에 노란산국한송이랑 연보랏빛 개미취와
흰쑥부쟁이를 꽂으니 그 어떤 꽃꽂이가 그렇게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줄수 있을까 싶더군요.
단풍잎과 들꽃잎을
황재권님의 '야생초편지'에 곱게 펼쳐 넣었습니다.
잘마른 나뭇잎과 꽃잎을 편지지에 붙여서 올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야 겠습니다.
아이알림장에 한웅큼 단풍잎을 보내고도
꽤 많이 남아 있는 단풍잎을 다시 한번 하나하나
들여다 봅니다. 그속에 미천골계곡의 단풍든 산이
그대로 들어와 있는듯 합니다.
조촐한 가을여행이 주는 행복한 느낌까지 접어서
책갈피에 넣어 두면 훗날 그 추억속에 행복한 느낌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