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주부 시절에 난 마흔이란 아주 대단한 자리라고 생각했다.
육아에 허덕이지도 않고 생활에 찌들림도 없이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생각의 폭도 아주 큰 사람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의 나.
이제 육아에는 벗어났지만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대부분의 친구들은 어느새 아이들의 공부가 최대의 과제가 되어 버리고 어느정도 기반을 잡은 친구들은 48평형은 기본으로 갖추어야하고 알게 모르게 생활의 때가 더 끼이고 욕심이 더 많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에 초연해질줄도 알았는데 오히려 나이드신 분들에게서 탐욕과 옹고집을 발견할 때의 그 참담함이란.
절대 나이가 저절로 깨달음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어느 선배가 그런다.
오십이 되니 그렇게 절실했던 아이들의 진로도 아이의 능력에 따라 엄마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어느덧 결정이 나 버리고 남편들도 거의 현직에 있는 사람이 없어지니 자연히 평등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 지더라고..
그런데 아직 나는 그런 오십은 정말 되고 싶지 않다.
아들이 자라고 딸이 자라 나를 이해해주고 챙겨주더라도 지금은 내가 챙겨주어야하는 시간들이 더 흥미가 있다.
아무런 욕심없이 다 버리고 물흐르듯이만 사는 생은 어쩌면 나는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자신의 길을 정하여 한 길로만 갔던 분과 오랫동안 모임에서 교제를 해 오면서 세상에 욕심 피울 것 아무것도 없더라. 그것 다 부질없다. 하는 말에 나는 아니 내 나이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아직 젊고 아직 가보지도 않는 길인데 먼저 가본 사람이 하는 말이 꼭 내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너무나 늙어 보였던 그 때의 감정이란.....
치열하게 살아보고 느껴본 뒤 원하지 않아도 오는 나이듦에 순응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이다.
어제도 시험을 앞둔 아들이 새벽 2시까지 공부하는 동안 아들 방에서 책을 읽고 같이 외우는 것도 도와주었다.
공부는 아이가 하지만 지금의 내 참여는 내의지이므로...
갓 마흔이 되어 퇴근해오니 아이들이 학원에 간 시간부터 돌아오는 시간까지 너무나 시간이 많다.
공부를 하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아주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지만 이렇게 나이들어가는가보다 하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한다.
일주일 단위로 시간을 정하여 일주일에 두번씩 피부 마사지도 가고 매주 토요일은 퇴근후 친구와 맛있는 식사를 하고 책도 보러 다니는 이 자유도 참 좋다.
그러나 앞으로 너무 많은 자유가 주어지면 이제는 직장을 얻으려 더 공부할 일도 ( 이제는 제법 내 영역을 찾았기 때문에 )영어를 더 해야할 일도 없는 지금 자꾸 편함에 길들여진다.
넓은 거실에 혼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과거에 꿈꾸어왔던 행복인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게 대단한 것만도 아니다.
매일 저녁 식사후 남편과 인근 대학교에 가서 많이 걷고 웃고 운동을 하면서도 왠지 더 뭔가 부족하다.
인근에 사시는 시어머님께 이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장도 봐드리고 말씀도 들어드리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뭔가 마땅치가 않다.
이제는 가정 일에서 나를 꾸중하는 아무것도 없고 시부모님은 그저 네가 있어야 아이들이 잘 자라고 애비가 있지 하시며 나를 인정해주신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내 자리는 생겼는데
내 그릇의 깊이는 이것뿐일까?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요즈음은 진지하게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나는 요즈음이다.
아마 가을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