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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BY 1004bluesky1 2001-06-14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이 책을 놓으며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내 잎싹의 죽음에, 마당을 떠남에, 초록머리를 키우는 것에 사로잡혀 머리 속은 책속을 왔다갔다 했다.
'이건 절대로 동화가 아니야. 어떻게 이게?'
씹어도 씹어도 단단하기만 한 심줄처럼 정체 모를 무언가가 생각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몇 일 후 나는 <치킨 런>이라는 또 다른 닭 이야기를 극장에서 만났다. 주인공 진저는 알을 낳으며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알고 사는 수많은 양계장 닭들에게 탈출의 희망을 심어준다. 자유를 향한 끝없는 경주를 시도하는 진저는 분명 또 다른 잎싹일 것이다.
그녀는 족제비 같은 주인의 도살 음모를 피하여 나그네새와도 같은 수탉 록키의 도움을 얻어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비행기를 만들어 울타리를 넘어가는 닭들의 대탈출은 과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행기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저 푸른 낙원을 향하여 날개짓을 시작할 때는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었다. 바로 그 순간, 가슴을 아리게 지나는 통증 그건 바로 잎싹의 몫이었으리.
평화로운 초록빛 낙원에서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우는 그들의 행복스러운 미래를 보았다면 잎싹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는 늘 여자의 행복은 아이 키우고 남편 사랑 받으며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내 눈에는 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늘 기죽고 불행하게만 비쳤을까? 정작 당신은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참 행복으로 생각하시고 사시는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 후 20년을 넘게 가족 뒷바라지에 일생을 바친 큰언니, 어렵게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시댁의 노! 한마디에 현모양처의 길을 택한 작은언니. 그들 역시 내겐 행복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삶을 낭비하고 있는 듯한 허탈감
일이란 걸 나와 떼 놓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난 결국 안정된 마당을 떠나 내가 그리는 이상국가를 향해 쉼 없는 전진을 해야만 했다. 돈, 지위, 명예를 다 물리친 사랑이라는 조건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결혼. 그리고 밥을 해결해주기 위한 일자리. 기약 없이 접어두어야만 했던 나의 꿈. 그래도 행복했다. 새로운 열망이 나를 두드리기 전에는. 그랬으리라 잎싹 역시. 그 호된 어려움을 무릅쓰고도 갈 수밖에 없었던 그 강인한 열망. 그러한 잎싹 때문에 나는 또 울고 말았다. 결코 그녀만의 모습일 수만은 없었기에
난 다행히도 2년 동안만 불임의 고통에 몸부림을 쳐야했다. 지금도 그 속에서 헤매고 있는 친구가 하나 있다. 그녀에게는 9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원인도 없이 암흑 속을 헤매는 그녀의 어려움을 잎싹은 알리. 그녀의 마당은 불임으로 인해 더 이상 행복한 마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불임을 받아들이거나 누군가가 놔두고 간 새알을 발견하기 전에는
마당에서 사는 것조차 인간에겐 왜이리 힘들기만 한 걸까? 그 마당을 나온다고 해도 초록머리를 품고 키운 것만으로 만족해야하는 잎싹의 운명을 순순히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암탉과 오리 사이의 애정은 아마도 사랑에 대한 진리가 아닐까? 사랑에 대한 어떤 조건도 서로를 이해하는 것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자식은 다 떠나기 마련인 거다. 애정을 많이 쏟을수록 더 빨리. 내가 그랬듯이 나의 아이들도 나의 마음을 다 불지르고 떠나버리겠지. 그래서 그 모든 기억들이 지워지기만 한다면...... 그래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결국 잎싹은 초록머리의 비상을 보며, 자식을 가진 또 다른 부모의 마음으로 어린 족제비의 양식이 되는 길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인 비상의 소망을 이루어낸다.
치킨 런의 진저나 갈매기 꿈의 조나단은 다른 무리들과 달리 꿈을 갖고 결국은 이뤄낸다는 면에서 잎싹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들의 개운한 행복의 결말과는 달리 잎싹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남긴다. 먹고 먹히면서 살아가야 하는 자연의 섭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 던지는 무게는 결국 살신성인의 차원으로 승화된다.
아직은 세상을 살아가는 도를 덜 터득한 것인지 내게는 그러한 승화가 따스함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선다. 내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휑하기도 하고. 오늘도 잎싹은 저 하늘 어디에서든 나의 외로운 투쟁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그러한 생각에 꿈을 향한 전진에 조금은 더 힘을 실어 하루를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