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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인연


BY dlsdus60 2001-06-14

업무가 아닌 산행을 위한 나들이로 지방을 다녀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일이었다.
나의 동호회 창단 1주년 기념하여 이루어진 모임이었기에 출장과 달리 몸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떠날 수가 있었다.
모임 장소는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사는 여러 회원들의 교통편을 고려해서 중부도시
대전으로 결정을 하였다.
우리는 대전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계룡산 등반 계획을 세웠으며 고풍스럽고 고향집
닮은 옛터라는 음식점에서 장작 타는 향기가 그윽한 가운데 저녁도 다 함께 먹을
예정이었다.
거의 한달 동안의 시간을 두고 계획하고 실행한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여러 회원들이
참석을 못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모임 당일이 되어 우리의 일행은 복잡한 도심을 빠져 나와 고속도로를 접어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교통량으로 승용차는 평소보다 배가 느린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릴 다른 회원들이 걱정되어 휴게소에 한번 들리지
못하였지만 약속한 장소에 몸을 내린 건 도착 예정 시간보다 한시간 반이 지난 후였다.

우리는 상면의 기대에 피곤함도 잊은 채 1차 만남 장소인 경순님 집에 도착하자 그녀
가족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그녀의 남편인 그도 만날 수 있었다.
그에 관한 얘기는 경순님을 통해 조금은 들을 수 있었지만 외모까지는 유추해 낼 정도는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우리의 일행을 처음 본 그는 오랜만에 만날 친구의 방문을 기다린 듯 우리를
넉넉한 웃음과 반가움으로 맞이하였다.
그는 생각보다 작은 키와 다부진 체격으로 중후함이 있었으나 스포츠형 헤어스타일과
갈색 안경테로 인해 깔끔한 인상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일행은 옛터로 옮겨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속가를 떠나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로 소문난 계룡산 가까이 살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도 자신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자칭 도사라며 계룡산과 접목을 시키고 있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은 황당함으로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우리
일행은 끊이지 않는 폭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느릿느릿한 말투와 적당히 진지한 표정의 이야기는 언제나 본론보다 서론이
길었으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낱말들을 자주 사용하여 흡사 단군신화를 접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그의 출생 신화에 도취되어 우리는 실로 오랜만에 웃고 떠들면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도 나는 그와 함께 계룡산을 오르면서 황당한 논리와 쉴새 없는 선문답으로
일행을 마음껏 웃게 만들었다.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나도 그에 못잖은 유머와 위트로 그를 웃기기도 하였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에서 배어 나오는 유머는 닫혀진 나의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들었고 가파른
등산로를 즐거운 기분으로 오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등산을 마치고 동학사를 지나 유성으로 빠져 나오는 십리 벗꽃길은 새롭게 돋아나는
새순과 함박눈 날리듯이 벗꽃잎을 뿌렸으며 수많은 인파들과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봄은 그렇게 모든 생명들을 거리로 산으로 들로 초대하여 4월의 축제를 열고 있었고
그와 나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유머와 코미디를 접했지만 그와 나눈 유머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평소 별로 말을 많이 하지 않던 내가 그와 지낸 이틀 동안은 나의 감춰졌던 끼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으며 만약 그가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상대성 원리에 공감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정을 한시간이나 넘긴 이 시간에도 나는 그와 못 다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이제 4월이 지나면 봄은 뜨거운 태양에 질식하겠지만 그의 느릿한 말투와 능청스럽고
진지한 표정의 그는 나의 4월 인연으로 기억될 것이며 내 마음속에 친구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