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가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간지 두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병실 복도에서 초조하게 딸아이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여자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수술에 들어간 딸아이 예슬이는 초등학교 때 귀걸이를 해 보고 싶어 귓불에 구멍을
뚫었던 것이 부작용이 생겼고 그 상처가 아물면서 귓불속에 생각지도 않았던 좁쌀
만한 작은 종양이 생겨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그 종양은 성장하는 암세포 형태로 발전해 버린 것이다.
서둘러 점검하고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한 딸아이는 머리
카락으로 그런 귓불을 감추고 다녀 가족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였으며 그
귓불의 종양은 자라서 딸아이가 6학년이 되었을 때는 구슬 만한 혹으로 변해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이라 딸아이를 몹시 꾸중을 하였지만 딸아이의 커 가는 귓불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치료를 서둘러야 했다.
여자는 딸아이를 데리고 동네 성형외과를 찾았는데 의사는 여기서는 힘들겠다며
종합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였단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여자는 서둘러 귓불의 종양제거 수술에 능하다는 종합병원을
수소문하여 예약하고 몇 달을 기다린 뒤에야 수술에 임할 수가 있었다.
여자는 딸아이의 입원 수속을 마치고 완쾌에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 딸아이 침대 옆에 놓인 간이 침대에서 새우등을
하며 밤을 지샜다.
2차 검진을 마친 다음날 아침, 수술을 해도 재발율이 40% 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우는 딸아이를 수술실에 들여보낸 걱정에 아침도 거른 채 여자는 병실 복도에서
나를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은 생각보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소란스럽고 분주해 보였다.
평소에 나는 몸이 아파도 잘 찾지 않는 병원이라서 내눈에 보이는 광경 하나하나가
낯설고 약품냄새가 역겨워 더이상 머물고 싶지가 않았다.
층층마다 설치된 안내 데스크에서는 간호원들이 병실을 찾아온 방문객들과 상담을
하면서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까지 돌보느라 바빠 보이고 두세 명의 젊은 의사들은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들쳐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 용어로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쉴새없이 오르내리는 승강기에서 쏟아져 나오고 들어가는 사람들로 복도는
시장처럼 소란스럽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바쁜 간호사들의
발목을 붙잡아 버린다.
애써 수화기를 붙들고 통화하는 간호사들의 표정엔 웃음보다는 고단한 일상의
업무가 배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병실 복도에 전깃줄에 내려앉은 참새처럼 줄줄이 앉아 미역이 좋다느니,
안 먹어서 탈이다는 둥, 나는 버섯을 많이 먹었다는 둥 병마와 싸운 얘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서너명 남정네들의 걸쭉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고 멀지 감지 떨어져
있던 중년의 아주머니는 입원한 가족이 걱정되어 치료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는 듯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남정네들의 투병기에 흡벅 취해 있었다.
또다시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젊은 남자
환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링겔주사병을 스텐 철봉에 매달고
복도를 나온 또다른 환자는 불편한 동작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시야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화려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으로 치장한 채 복도를 나온 낯선
중년여성을 본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자신들의 기준과
생각에 따라 그녀의 신분을 유추하며 신기한 듯 복도 모퉁이로 사라지는 그녀를
뒷모습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또한 침묵하며 옆사람들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 여인네는 얼굴에 분칠한 화장발
만큼이나 근심이 묻어 있었고 환자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보호자들은 두려움이
얼굴 가득 쌓여 있었다.
위암 환자로 입원한 한 노파는 병실에서 링겔주사기를 매단 철봉을 힘겹게 밀고
복도로 나와 앉아 바깥 세상이 보이지 않는 비상구를 총기 잃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노파의 병을 대신이라도 알듯 다가서는 노인은 그 노파의 남편인 것 같았다.
저기 의자에 가서 앉으라는 노인의 권유에 노파는 힘없는 팔을 내 젖자 무안했는지
소리 없이 물러나 병간호에 지친 몸을 빈 의자에 기대어 자신도 환자인 듯한 얼굴로
노파를 안타깝게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노부부의 표정에 짙게 묻은 삶의 권태로움이 소란스러움과 분주함에 묻혀
잡초처럼 밟히고 그들을 본 나는 이름 모를 공허함과 서러운 생각에 잠시 내 마음도
숙연해졌다.
오늘도 병실을 찾아 온 사람들의 표정에는 한결같이 웃음이 없다.
병마에 쫓기는 환자들의 두려움과 가족의 안부에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로 병실 복도의
하루는 채워지고 딸아이의 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여자의 표정에는 아직도 초조함이
배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