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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질 몸인데.......


BY 다정 2002-09-18

시골의 어머님이 전화를 하시면서
눈물 섞인 목소리로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속 좁은 며느리는 제 성질에 심드렁하게 대답을 하고
내내 기분이 울적하였다.
명절이 또 시작인가 보다.
자식은 많아도
모두 제 나름의 이유와 앙금으로 얼굴 보기 힘들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조상들 뫼시는 일때문에
걱정이 앞서고
심통난 이 며느린 나름대로 열이 오르고 그랬다.

딸이 갓난 아기 였을때는
좁은 소형차에 몸도 옴작달싹 움직이기도 못하게 끼여서
명절이 돌아 오면 서둘러 시골로 내려갔었다.
그래도 그 만큼의 즐거움이 있었고
대소간의 일들과 끝이 날것 같지 않은 명절 준비에도
저녁이면 어머님이 손수 준비해 주신
술상을 받고선 남편 흉도 마음껏 함께 보고
끊어질 듯한 허리 아픔도
술술 넘어가는 매실주 한 잔으로 달래곤 했었다.
각자의 집에 발통달린 기계가 늘면서
그들만의 시간으로 변질되어 버렸고
동서들도 얼굴 안보고 산지도 꽤 되어가고
어느날 부턴가 이 명절이 두렵기까지 하게 되었다.

ㅡ당신 말이야,,나도 자식을 키우니 가는 거지
정말 너무 한것 아니야?
남편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말이 없다
ㅡ고모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들은 다하냐고..
난 솔직히 고모 보기 미안해
부모님 얼마나 사신다고,,정말 웃기지도 않어..

그러게,,,남편이 무슨 죄가 있겠냐 말이다.
당연한 일 하면서 생색내듯이 큰 소리 치는 마누라인데.
누구 말처럼 죽으면 없어질 몸인데
내 몸 하나 움직여서
남편 마음도 편하고
그나마 내 자신도 편하다면야,
죽으면 없어질 몸이라고 누누히 이야기 하던 우리 형님
같이 가자고 말은 했는데
아직도 글쎄 올씨다이니......

갑자기 옆에 있던 아이 뜬금없이
ㅡ엄마 우리반 애들이 엄마 보고
나랑 하나도 닮지 않았대
엄마가 *********하대..
???
그러자 남편 기다렸다는 듯이
ㅡ야,,니 친구들 니 엄마 안보고 옆에 딴 아지매 본거 아냐?
가까이 와서 보라 캐라,갸들 눈이 나쁜지,,낄낄낄
딸이랑 둘이 신나게 웃고 난리났다.

혼자 열이 나서 냅다 따따따 하던 상황인데
분위기가 일순간 쏴아 하니
얼렁뚱땅 넘어가고
우리집 명절 맞이 앞풀이는 나 홀로 마당이 되었고
아무래도 딸 아이가 머리를 쓴 것 같으네.

그 언젠가의 추석처럼
동서들끼리 거하게 한 잔 하고 싶은데
이 또한 지나친 욕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