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운동회를 하루 앞두고 조금은 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린다.
내일은 과연 비가 올까 안 올까 궁금한 마음에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인터넷으로 날씨를 검색하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고 하여
사무실엔 오전만 휴가를 얻기로 한다.
운동회날 아침 ...
하늘은 푸르고 구름한점 없이 투명하다.
나도 덩달아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져
도시락을 준비하는 바쁜 손길에 콧노래마저 흥얼거려진다.
시아버님께서는 손주녀석들의 재롱을 보시러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오신다.
어른들 아침밥상 차려드리랴, 점심 도시락 준비하랴 정신없이 분주한 아침이지만
그런 아침이 참 흐믓하고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잠시나마 지켜볼 수 있으니
그런 반나절이 더없이 소중하다.
아침 설겆이도 채 마치기 전인데 어른들은 커피를 기다리신다.
부시시한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커피 한잔 내어 드린다.
해마다 봄, 가을로 있는 운동회때마다 손수 오셔서
이것 저것 챙겨서 아이들 돌봐주시는 시부모님들...
그래도 이만치 건강하시니 그것 또한 내게는 감사해야 할 일이지...
며느리는 그제서야 씻으러 욕실로 들어가는데
어머님은 벌써 분단장 곱게 하시고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신다.
예쁜 피크닉 바구니는 젊은 며느리더러 들고 오라 하시며
당신께서는 음료수 가방과 야외용 자리를 들고 가시마 한다.
뒷정리를 마치고 학교 운동장으로 가니 벌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지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신설된 학교라서인지 아직은 나무들이 어리기만 해서
변변히 앉아 있을만한 나무그늘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좁디 좁은 화단가에 자리를 펼치고는
저마다 자녀들을 응원하느라 시선을 고정시켜 둔다.
꼭 1등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씀도 들은 척 만척
두 아이들은 정말이지 참 잘도 달린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1등이다.
제 엄마는 학창시절 달리기 잘 못했는데...
그거 안 닮아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1학년 딸아이의 꼭두각시춤 순서가 되자
아이들은 저마다 알록달록 색동무용복을 입고 등장하는 거였다.
어머 ... 이걸 어쩌지?
나는 순간 뭔가 전달이 잘못 되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모두들 단체로 구입해서 입은 듯 똑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
우리 아이는 엄마에게 그냥 한복 가져오란 말만을 하길래
자기 꺼는 작다고 제 언니 한복을 보냈는데 ...
아... 어쩔까나...
그 치렁거리는 긴 한복을 입고서 꼭두각시춤이라니 ...
가슴은 콩닥이고 내 아이만 다른 복장을 하고
여러아이들틈에 끼어 있을 생각을 하니 참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여
어디에 있을까 아이를 찾아 보았다.
선생님께서 보시면 얼마나 무관심한 엄마를 둔 아이처럼 느껴지셨을까?
난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드디어 아이들의 꼭두각시춤은 시작되었고, 아이는 긴 한복치마를 입고서도
전혀 쭈뼛거림조차 없이 천연덕스럽게 자신이 맡은 동작을 충실히 하고 있는 거였다.
무용이 끝나고 아이가 옷벗는걸 도와주러 함께 교실에 갔을 때도
단 한마디도 자신만 그런 옷차림으로 왔다고 불평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나 속으로는 마음이 아프던지 ...
엄마한테 징징거리며 짜증조차 내지 않는 아이에게
너 혼자만 다른 옷 입어서 창피하지는 않았니? 하고 물으니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표정이다.
어린것이 맘놓고 투정조차 부리지 못할 만큼 제 엄마가 무섭기만한 존재는 아니었는지
아이에게 난 과연 어떤 엄마였는지 ...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었다.
그래... 늘 바쁘다는 이유로
어쩌면 자주 자주 알림장을 펼쳐서 챙겨주지 못한
부족하기만 한 이 엄마탓일꺼야...
그런데도 한마디 불평조차 하지 않는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된단 말인가?
큰 딸아이는 포크댄스를 해야 한다며
흰 블라우스와 넓게 퍼지는 스커트를 준비해서 가야한다고
분명하게 전달이 되어서 이쁜 모습으로 남자 짝과 댄스를 추었는데...
에구 ...
덩치큰 1학년이라서 내가 작은 아이를 너무 믿고 있었나보다.
아직은 어리기만한 1학년인데 ...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며 아이에게 너무 모든 걸 맡겨 버리지는 않았는지
그런 핑계로 무관심하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번 운동회에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아이들이 옷을 갈아 입을때 마다 엄마들이 교실을 들락거리면서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애써 쓸고 닦았을 교실바닥을
신발을 신고서 들어가는 광경을 보니 정말 놀라웠다.
운동장에서 자신의 아이 순서가 되어 무용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들 무비 카메라 들러 메고서 제 아이를 찍느라고 운동장 한가운데까지
들어가 있는 바람에 제대로된 율동을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는 것 ...
어찌 그리도 모두들 자기 자식만 중한 것인지 ...
아이들의 교실을 왜 내집 안방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참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미 남들이 밟고 지나가 모래투성이인 교실을 양말 신은 발로 들어가자니 그렇고
신발을 신고 들어가자니 나 또한 똑 같은 사람 되는 거 싫어서
아이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늘 직장일에 메어 있는 사람이라서
마음은 있지만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 가서 함께 청소를 도와준다던지
그런일은 하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없이 행동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는 가 정말 모순이다.
열마디의 말 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지는 실천에서
아이들이 뭔가를 느낄수 있게 해 주는 거
그것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투명하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좋은 마음으로 간 운동회에서
지켜지지 않는 무질서함에 기분이 씁쓸해졌다.
아이들은 아마도 지금쯤 어제 엄마들이 더럽히고 간 교실을
땀흘려가며 닦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쯤이면 나 보다는 다른 이들의 수고로움을 염려해서
자신의 불편함을 좀 감수할 줄 아는 미덕을 갖고 사는 사회가 될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오늘 하루 잘 했다는 말만 했지만
어른인 내 자신이 싫은 하루였다.
하루쯤은 아이들의 동심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의 순수함을 마음껏 받아들이고 싶었는데 ...
그 짧은 시간속에서도 어른들은 모범을 보이고 있질 않았다.
운동장 하나가득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는데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게 푸르고 깨끗했으면 하는 바램이 인다.
가을 운동회는
어릴적 추억을 더듬어 보는 장이기도 하며
내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는 하루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에게 뭔가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좋은 기회일 것 같은데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걸까?
누구나 바쁘다는 이유로 여유롭지 못한 마음을 어디에서 다시 찾을까?
대답없는 질문만 푸른 하늘에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