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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면 이런 민원 사례 어떻게 해결하실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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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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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특별한 친구


BY frog1015 2002-09-17

엄마는 지난 겨울 이혼을 했다.
미장가인 아들과 산설고 물선 서울에 살게 되었다.

불쌍한 과부를 위로하다 제 아내를 생과부 만든 아빠가 괘씸하기에 엄마가 더욱 안타까웠다.

사람이 나이 들어 늙으면 자식도 소용없구 친구와 돈이 우선이란건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느끼게 되었다.
말상대할 친구가 없으면 외로움에 더욱 지쳐가고 없는 병도 생기기 마련이며 친구가 있더라도 일단은 돈이 있어야 생계는 물론이요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다.

엄마는 교회를 찾았다. 일단 신앙심이란게 기본적으로 있었기에 찾았고 또 친구가 필요했기에 찾았다.

난 엄마에게 특별한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들 틈의 씩씩한 남자는 무리의 활력소이고 윤활제이다. 남자들 틈의 여자가 꽃이 되듯이.

교회에서 사람을 아무리 많이 사귀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외로워지기 시작할것은 뻔한 일이었다.

'특별한 친구'또는 '애인'이라도 좋았다.
엄마가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를 씻어내고 옛생각에 허우적대지 않도록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활동적이고 근사한 신사를 발견하기를 기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인터넷을 뒤졌더니 '새친구 찾기' 코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중년의 남자를 무슨 수로 알아낼 수가 있을까마는 궁하면 통한다더니 인터넷은 마법사다.
엄마나이 또래의 연령대와 취미, 종교, 거주지 등을 입력하니 적당한
사람들이 꽤 여럿 나온다. 그중에 내가 사는 곳과 엄마가 사는 곳과의 중간 지점쯤 되는 지역의 남자를 골라낼 수 있었는데 직업이 초등학교 교사이고 몸담은 학교는 내가 사는 곳에 있는것이 '바로 이사람'
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사람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쓸쓸한 엄마와 함께 등산을 다닐 수 있는, 촌사람인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그사람은 내게 기특하고 훌륭한 딸이라는 칭찬을 뿌려주고 자신도 시골출신이며 소박한 사람이라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사람의 프로필엔 함께 외로움을 나눌 사람을 찾는다고 적혀 있었기에 다른 사항은 캐묻지 않고 약속을 정했다.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떠보는것을 잊지 않았고 엄마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결심했어!" 하기 까지는 약 2주가 걸렸다.

차에 엄마를 태우고 혹시 실망스럽더라도 또는 그사람이 실망을 하더라도 근사한 카페에 딸년과 우아하게 차한잔 마신 셈으로 나가자고
많이 다독이며 담쟁이가 덩쿨진 카페로 향했다.

그사람에 대해 기대를 하며 기다린건 아니지만 외모가 썩 맘에 들진 않았다. '외모는 중요치 않아...'
아니다! 인생을 웬만큼 살아온 중년이상의 사람들의 외모는 그사람의 잠재된 모든것을 형상화한 것이라 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었다.

그사람과의 오고가는 대화중 두번째부터의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 우리(엄마와 나)에겐 가히 살인적이었다.
"그럼 선생님은 누구와 사세요? 혼자요? 자녀분들과?....."
"난 마누라와 자식들과 함께 살죠!"

에어컨 바람이 자못 서늘하기까지한 천장이 매우 높은 실내에서 난
순간 등덜미가 축축히 젖어오는 걸 느꼈다.
얼음이 채워진 주스를 쉬지 않고 들이켜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기도 안 찰 따름이었다.

"부인이 아시면 싫어 하실텐데요. 왜 나오셨어요."
"마누라 몰래 만나면 되죠 뭐"
평생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초로의 신사가 할 말이 아니었다.
아니 그는 진즉에 신사이길 포기한 사람이었다.
돈많은 과부 등쳐먹으며 비실비실 놀아보려던 참에 왔다 잘걸렸다
하며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이다 싶었던거다.

대화가 오래 갈리가 없었다.
입가에 조소를 흘려 보이며 서둘러 헤어져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가 그래도 참길 잘했다 싶었다.
가뜩이나 어이가 없는 엄마 앞에서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면상에 주스를 끼얹으며
'네 마누라의 외로움이나 함께 나누시지' 했다면
엄마는 분풀이가 되었다기 보다 그안의 다른 이목에 더더욱 자존심이 상했을 수 있었을 테고 그런일에 담대한 것이 차라리 품위나마 잃지 않는 행동일 것이니까.

엄마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름다울 수 있는 외로움일텐데 공연히 싸구려 만든건 아닌가 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함께 외로움을 나눌 분을 찾습니다'
그사람에게서 온 메일도 삭제하고 휴지통마저 비우고 웃기는 에피소드 쯤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앞으로도 섣불리 사람을 찾아다니며 엄마 이름에 흠집을 내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당연한 일이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돈 그리고 친구이다.
그리고 지금 깨달은 중요한 한가지는 자존심 이란 거다.

엄마를 아름답게 늙도록 그냥 놔두는 일도 능력없는 딸년이 할 수 있는 기특한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