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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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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내 낭군님.


BY 푸른파도 2002-09-17

남편이 사심없이 웃을 때 난 남편에게서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오늘 저녁 남편의 얼굴에서 아주 오랜만에 사랑스러움을 보았다.

아마 신혼때였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들어와 앉으면
남편은 내 무릎을 베곤 했다.
화장을 하며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 보는데
세상에...난 다 자란 남자의 얼굴이 이처럼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오랜동안 난 그 아침시간을 즐겼었다.

나보다 한살 연하인 내 남편은 절대 어려 보이지 않는 남자다.
모든 면에서 항상 나보다 연상의 행동(!)을 하는 내 남편에게
난 늘 철부지일 뿐이다.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탓에..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에..
*조금은 무서워(?) 보이는 인상탓에..
처음 대하는 사람은 남편에게 쉽사리 다가서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남편만큼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도 드물다.
그걸 알기에 난 내 남편이 좋다.

내 남편은 결혼후 지금까지 내 생일날에
늘 미역국을 손수 끓여 주었다.
그것도 늘 부재료를 달리 하여서..
쇠고기를 넣을 때도..
조갯살을 넣을 때도..
홍합을 넣어서 끓일 때도..
생선뼈를 넣어서 끓였을 때도..
늘 그 맛은 일품이었는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내 코를 자극하곤 하던 그 고소한 맛을 잊지 못한다.
푹 끓인 미역을 좋아하는 탓에 몇시간 전부터 부엌일을
하곤 하던 내 남편..
처음 가게를 하게 되었을 때
이번엔 미역국을 먹을 수 없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오후 네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를 했었다.
다 끓여 놓았으니 어서 와서 먹으라고...

아마도 난 그 미역국을 내 평생 다하도록 너무 맛있게 먹게 될 것이다.
영화를 보러 간다든지..
조금은 특별한 외식을 한다든지..
드라이브를 하며 시간을 보내든지..
가슴 설레이도록 기분 좋은 선물을 받든지..
(내가 카드값을 물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리 넉넉치 못한 용돈을 주곤 했던
난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그 마음만도 이쁘게 보였었다)
아니면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날 흐뭇하게 하는,
*라이브카페에서 날 위해 나훈아의 <사랑>을 불러주던 기억...
*그윽한 눈빛으로 아주 조용하게 브루스를 추었던 기억...
*책 읽고 있던 가을날..노란 은행잎을 든 남편의 손이 책장사이로 보이던 기억...
*슬며시 담배 사러 간다며 나가선 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오던 기억...
*한 겨울밤 자는 얼굴에 뜨거운 호빵을 갖대대던 기억...
*샤워를 할라치면 씻어주겠노라며 젯밥(?)을 위해 정성스레 씻겨주던 기억...
그 모든 것들보다 난 미역국을 끓여주는 내 남편에게
훨씬 고마움을 느끼고 존경심(?)까지 갖는다.
늘 내 편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늘 감사하면서도 그 표현을 게을리 하는 철안든 나.
사랑한단 말조차 돈드는 일도 아닌데 아끼는 멋없는 여자.
그런 나를 한결같이 지켜봐 주고 사랑해주는 내 남편..

그런 내 남편이 요즘 많이 지쳐 있다.
남편에게 조금더 환하고 고운 미소로 청량제역할을 해야 하는데..
언제 한번 사랑의 편지를 써서 주머니에 넣어 놓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