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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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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손님


BY 라니 2002-09-06



한달에 한번씩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셔서

건강을 체크하시고 한달분의 약을 한보따리 받아가신다.

이번 아버지의 정기검진날에는 아버지,엄마와 한집에 사시는 구순이 넘으신 외할머니께서 동행을 하셨다.

막내 남동생이 자신이 살게될 신혼집을 외할머니께 보여드리고싶어

아버지 병원가시는 편에 서울에 함께 가시자 하니

평상시엔 차타기를 겁내하시던 외할머니께서 이번엔 어쩐일인지 선듯 따라나서서는

남동생네 집을 구경하시고 내려가시던 길에 우리집에도 들렀다 가셨으면 한다며 남동생이 연락을 해왔다.

7~8년만에 구십이 훨씬 넘은 외할머니가 우리집을 오신다니

난 너무도 반가워 동생네 집에서 우리집까지의 40여분이 40년 마냥 몹시 길게 느껴졌었다.

바쁜 엄마,아버지를 대신해 외할머니는 늘 어린 우리 5남매의 든든한 버팀목이셨고

또, 여러가지 추억거리도 많아 외할머니에 대한 정이 남달랐었다.

문득, 30여년전 어느봄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아무래도 아침부터 외할머니의 거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6~7살의 어린손자 손녀를 자꾸 대문밖으로 ?아내시고는 허둥대시었다.

그런 외할머니의 모습이 수상쩍어 대문안을 기웃거릴라치면

후다닥 ?아오셔서는 멀리 가서 놀라며 종주먹을 들이대시었다.

동생과 난 그런 외할머니가 무서워 저 멀리까지 ?겨 갔다간 살그머니 되돌아 오기를 서너차례...

동생은 그 ?고 ?기던 놀이가 시들해졌는지 슬그머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리었다.

하지만 난 지금 우리집에서 무슨일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살그머니 대문뒤에 숨어 외할머니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순간 외할머니는 갑자기 허둥지둥 방안으로 들어가선 나오시질 않는거였다.

' 무슨일일까 ?'

어린맘에도 무슨 일인가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나도모르게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 한걸음 두걸음 소리죽여 방문앞으로 살그머니 다가섰다.

헌데, 방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 이...상...하...다 '

느끼는 순간 철벅철벅 무언가를 씻는 물소리가 나며 간간이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무슨소린가 귀를 곤두세우며 들어보니

" 응애~~~~~~ 응애~~~~~~ "

가녀린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 아 !! 엄마의 배가 남산만 하더니 엄마가 아기를 나셨구나. 내동생이구나...'

방안 광경이 몹시 궁금해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검지 손가락에 침을 잔득 묻혀 살그머니 문구멍을 뚫고는 방안을 들여다 보았다.

방안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엉망이된 이부자리와 피묻은 옷가지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아기 목욕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틈바구니속에서 외할머니는 아주 조그마한 핏덩이 아기를 씻기고 계셨다.

온통 땀에 젖은 엄마는 벽에 축늘어져 기대앉은 모습으로 아기의 몸을 닦아주고 있는 외할머니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고 계셨다.

그런 광경을 훔쳐본 내 가슴은 알수없는 설레임으로 꽤나 혼란스러웠다.

그날밤, 아버지가 퇴근해 오시자마자 난 엄마의 애기낳는 장면을 다 보았노라며 아버지를 ?아다니며 조잘조잘 떠들어대었다.

그후로 아버지는 심심하실때마다 재미삼아 나에게

" 엄마가 애기를 어떻게 낳디 ?"

물으시면 난 엄마의 애기낳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모양으로

" 으응 ~~ 저기 있잖아... 엄마가 끙!! 하고(변보는 흉내를 내며) 힘주니까 애기가 쑥~~ 나왔어 ."

하고는 천연덕스럽게 흉내까지 내며 신나서 한바탕 얘기하고나면

그때마다 엄마, 아버지, 외할머니는 뭐가 그리도 우스운지 배를 잡고 한바탕 웃으시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젊고 고왔던 외할머니였지만 지금은 늙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언제 또 오시게될지도 모를 우리집을 찾아오신다니 얼마나 반갑고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얼른 따끈한 밥을 지어 외할머니께 대접해드리니 내맘이 그렇게 뿌듯할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참으로 귀하고 반가운 손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