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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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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친구의 생일파티


BY 참빗 2002-09-03

나는 초보학부모이다.
형광등 소리를 달고 사는 내가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일이
어떤건지 잘 알고 있을리가 없다.

촌지를 안하는 사람도 있나라는 동네분위기에 맞춰
나도 돈봉투 들고 선생님 찾아도 가봤었는데
다행히 아이선생님은 돈을 밝히지도,거부하지도 않는 분이셨다.
그냥 마음이 담긴 선물을 들고 갔었다면
더 좋은 기분으로 학교문을 나섰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었다.

아뭏든,현실에 대단히 둔한 내가 그 말많고 탈많은
초등학부모가 되고 보니 참 기가막힌 일 투성이이다.

1학년도 점심으로 급식밥을 먹고 오는데
2교시 쉬는시간에 종종 엄마들이 간식거리를 사들고 와서
아이들에게 뿌린다고 한다.

난 500짜리 아이스크림 40개 또는 500짜리 빵 40개 들고 들어가서
선생님 보는데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먹어'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혹은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해두자-
아이가 오늘은 빵 먹었어.오늘은 음료수 먹었어라고 해도
그래? 라며 들어넘겼다.

아니 좀 아니꼽긴 했다.
기왕 사가지고 올거면 말이야 과일을 쏘던지,
음료수니 초코파이같은 건 집에서도 못먹게 하려고 얼마나 애쓰는데
또, 이 습기찬 여름에 빵같은 건 잘못먹었다가 단체로 설사라도 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참 엄마들 용감하기도 하다.
등등
아이안듣는데선 궁시렁거렸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 학교입학하고 얼마 안되어 등교길이 서투른 아이를 위해
학교운동장에서 대기하도 있을 때
열심히 집안자랑 남편자랑 아이의 학원자랑하던 엄마들이
급식은 언제하느냐고,애 집에 일찍오면 짜증난다고
이구동성으로 입맞추는 거 보면서
저런 엄마는 소수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여기 교육일번지라고 착각되어지는 강남권에 살면서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자꾸 들고 있다.

며칠 전 아이가 친구의 생일파티 초대장을 받아왔다.
아들녀석은 생일선물 준비할 주변머리도 없어서,
둘째 업고 1학년은 무얼 좋아하나요 가게마다 물어가면서
그래도 내 아들이 선물내밀고 챙피하지는 않을만큼의
액수에 맞는 선물을 사서 남편 저녁까지 미뤄가며 포장해서
아이 책가방안에 들려보냈다.

내가 내 친구 생일파티 다녀오는 것보다
내새끼가 친구생일파티 다녀오는게 더 궁금하고 가슴이 떨리는 건
아마 다른 엄마들도 비슷할거라 생각한다.

집에 온 아이붙들고 맨 먼저 묻는것도 비슷할것이다.
"뭐 먹었어?"
"피자."
"피이이자?" -여기서 좀 께림칙했다.정신수준은 몰라도 유행은 최첨단을 가는
이 동네에서 1학년애들 불러놓고 피자를 먹이는 집은 아직은 못봤으니까.
고학년이면 이해가 간다.고학년정도 되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챙겨먹기 때문에.
"또?"
"짜장면."-가관이네.
"또?"
"김밤."
"또?"
"몰라.나도 기억안나."-으이그.
"피자 많이 시켰겠다."
"두판."
"두판? 친구들 몇명이 갔는데?"
"스무명은 갔어.여자친구도 다섯명이나 갔는데."
"그런데 피자를 두판만 시켰단 말야?"
"응.그래서 피자 두쪽씩 못주니까 한쪽씩만 먹으라고 했어."

-이 대목에서 아이앞에서 표정관리하는게 무척 힘이 들었다.-

"걔네집도 우리집처럼 방이 두개야?"
"아니.방 다섯개나 있더라.외할아버지집보다도 크더라."

이 동네에서 방 다섯개인 아파트면 10억가까이 한다.
아니.피자 한판이 아까우면 아이들을 초대하지 말던지,
정말 나정도만 사는 집이었어도 이해하려고 했다.
나처럼 여기가 아이교육의 일번지니 난 헐벗어도 여기서
애좀 키워보자고 그런 엄마인가보다 그렇게 이해해주려고 했다.

황당하고,솔직히 좀 분해서 그날 잠을 못잤다.
내가 비싼 집값치르면서 실체도 없는 헛소문에 속아
여기서 이러고 있는건 아닌가.
엄마들이 대부분 자기들이 과외로 공부했던 사람들이라
과외말고는 일류가 아닐수도 있겠다는 의혹.

개학날 집에 돌아온 아이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
"엄마 방학숙제 해온 사람 나하고 누구하고 누구 이렇게 세명이야."
방학숙제가 1학년이 하기에 좀 벅찬 수준이긴 했다.
나도 아이하고 씨름하면서 땀띠가 생길정도였다.

숙제하는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너 이 숙제안해온 친구
별로 없을텐데 ..선생님한테 혼나..그러면 얼마나 창피한데.'
이렇게 달래고 얼러가며 방학숙제 해서 보냈다.
여긴 교육의 일번지니까 삼분의 이는 해오고,삼분의 일은
여행다니고 하느라 못해올거야...나름대로 착각하면서.

방학숙제는 학원에서 안해주니까 못해왔나?

방이 다섯개나 있는 아파트에서 사는 부모가
아이친구들 불러놓고 피자 한판을 푸지게 못먹이고,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날마다 학교에 와서
필요도 없는 간식뿌리며 선생에게 눈도장 찍는일엔 열심이어도
정작 방학숙제엔 무관심한 부모들이 사는곳이
여기...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