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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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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개학


BY shinjak 2002-08-28


.. .. 2년 가까이 운동장 컨테이너박스 교실에서 먼지와
소음속에서 수업을 하다가 냉온방이 자동으로
되는새교실에서 처음 공부하는 개학날 아침.
어제까지 구질구질한 장마비가 개이고
하늘이 청명한 아침이다.왠지 마음이 설레인다.
한 달 넘게 헤어진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는 일이.

아침 일찍 싱크대 앞에 서서 콩보리밥에 통오이를
한입 물어 오물오물 하고서 또 한 술도 그렇게 하고
아파트를 휘 돌아 내려가는 마음이 상쾌하다.
아침식사는 거지같이 하고서.


초현대식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난다니
셋방살이 하다가 오랫만에 새 아파트로
이사가는 기분이다.

아이들보다 일찍 8시에 출근을 했는데도
몇 아이들이 교실 문밖에서 서성거린다.
까만 눈동자에 웃음을 머금고 인사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망녕인가.

개학식을 하고 동그랗게 모여 방학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열명 이상 친구를 찾아 악수하고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여전히 몇 내성적이고 의욕이 없는 아이는 책상에
그대로 앉아있다.

알림장에 <여름방학 이야기 나누기>를 썼다.

민영:제주도 바닷가에 가서 신나게 놀고 조개 목걸이를 만들어 왔다.
상우:옥천 외가댁에 가서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놀았다.
선홍:유진이집에서 하룻밤 자는데 침대에서 둘이서 꼭 안고 잤다.

푸름:손톱위에 봉숭아 꽃잎을 빻아서 물을 들였다.
병욱:갯벌에서 생물을 관찰했다.
문기 :목포 해양유물 전시관,남농 선생 서예를 보았다.

민재 :차를 일곱번을 타고 배가 고파서 죽을 뻔 했다.
상우:민속 박물관에 가서 북치는 것을 배웠다.
유라:바닷가에 가서 해지는 것을 봤다.해처럼 아름답고 싶다.

용범:엄마 직장에 가서 직접 요리를 해봤다.
상협:소나기를 맞으며 개미는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아버지와 모래성을 만들었다.울타리도 만들었다.
재형:세계의 역사와 문화에서 태극기를 공부했다.

지영:가지나물을 해 먹으니 생각 속에 고민들이 사라졌다.
맛있고 개운했다.
소리내어 울어 보았다.눈망울이 맺혔다.소리가 굵어졌다.


은수:어머니가 막대기로 때렸다.울었다.
준혁:하룻동안 들은 소리 개짖는 소리,공사하는 소리.자동차소리
채소사세요 소리,생선사세요 소리,재활용쓰레기차소리 아대한민국소리,
오토바이 부웅소리,매미소리 좋지않은 소리만 들렸다.

나정:나혼자 너무너무 심심했다.엄마는 잠만 잔다.
남대문에서 장사하니까.
소연:안면도에서 깜깜한 밤길을 걸었다.벌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렸다.
밤길을 걸으니 내가 용감해지는 것 같았다.

보영:아빠회사에 가서 아빠 의자에 앉아 보았다.참 힘든 일을
하시는 것같다.
현웅:시골 고모댁에 가서 모깃불을 피웠다.쑥 냄새가 나서 향기로웠다.

준호:버스 종점까지 타고 가보았다.논이 있고 사람이 없다.
지겹고 졸렸다.
형진:개울에서 뜰채로 물고리를 잡았다.잡기가 어려웠다.

한나: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땀이 뚝뚝 떨어지면서
참 재미있었다.
수지:부모님과 역할 바꿔 해보기 내가 어머니가 되어 해보니
너무 재미가 있다.

여름방학 숙제 마흔다섯가지 중에서 하고싶은 것 해보기를
한 마디씩 한 것이다.
나름대로 뭔가 해보고 느낀 것을 말로 표현하고 적는 일을
제법 잘들 한다.
가르치면 할 수 있다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체험을 많이 한 아이들은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훨씬
뛰어나다.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이 선명하게 보여 좋다.
옆 창문으로는 옆집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 숙제를 검사하면서 한가한 오후를
새교실에서 보내니 참 좋다.
새것은 이래서 좋은가보다.
새해,새신부.새학년.새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