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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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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30) 산책


BY 영광댁 2001-06-02


산책

노환과 치매로 누워만 계신다던 사과나무집 형님의 시어머니께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손님과 일손을 헤아려 손넣어 주러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해걸음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알림장을 열어보니 내일 엄마 도서실 봉사날이라고 써 있었다. 
바꿔치기할 사람을 찿지 못하고 아침부터 뛰어다니며 도서실 봉사까지 마치고 돌아온 즈음, 꼭대기 집으로 올라오느라 몸은 땀 범벅인데 하뉘바람이 봄바람 나고 싶은 충동을 주었다. 

세검정에 있는 전망좋은 아들의 작업실이 있는 너른 집에서 ,마지막 효도를 받고 돌아가신 그분의 연세는 90이 넘으셨으니 壽도 누릴만큼 누리신건 아닌가.
다만 너무 일찍 홀로 되어 사셨으니 살아 계시는 동안 ,외로움이나 서럽고 어려운 일들은 차마 말로 다 풀어내지 못할 일이고, 마지막 길에 이르러 치매로 누으셔서 사람의 시중으로 시간을 보낸 것이 맑은 정신이었더라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을 다쳐 아파하셨을까.
壽만 누렸다고 모든 인생길을 다 행복하게 견뎌왔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 전체가 다 행복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형님.저 거기 작년에 가봤잖아요. 그때도 따라만 갔지 길 몰라요. 거기 먼저 가시거든 꼭 전화해 주세요. 하니 우리 아이들이 멋쟁이 아줌마라 하는 형님이 그러신다. 나도 몰라. 택시타고 갈거다 신다. 제일 가까운 전철역을 알려주시던지. 작은 모임으로 회비가 있으니 이런 일이 닥쳤을땐 서로 부담이 없어서도 좋다. 일할 손이 모자랄텐데 걱정들하며 먼저 가셨을 형님들의 마음을 그려보는 것도 마음이 따뜻하고 훈훈해지는 것은 무슨탓인가.

아이들 먹을 것을 챙겨두고 되도록이면 남편에게 저녁에 빨리 와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잘 되려나.자질구레한 일들을 아이들에게 챙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니 상가에 가신형님들이시다.

"잘 갔다 왔어. 우리들 와 버렸는데  혼자 갈래?
응.. 그집 자손이 적잖아. 손님도 거의 없고 성당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와서 일하고
작년에 갔을 때 하곤 너무 많이 다르더라. 할 일도 없는데 마냥 앉아 있기도 머쓱해서 그냥 왔지.
잘 하셨네요. 그래. 근데,집 단장도 잘해 놓았고, 작업실은 이제 식당을 하실 예정이라데.

남새밭으로 토끼, 개, 수탉이 있는데 야! 그 수탉 잘 생겼더라.
볏이 빨갛고 길게 늘어진게 얼마나 위엄있던지.,옛날 우리 자랄 때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수탉 있잖아 그렇게 생겼던데.털이 반들반들하고, 암탉은 병아리를 까서 오물오물 새끼들을
몰고 다니고,
"갈 때? 버스타고 갔지. 가다가 못 가면 택시 탈 생각이였는데 서대문쪽으로 돌아 가는데 그쪽 풍광 얼마나 좋아. 잘 사는 동네이기도 하고 나무도 많고 숲도 울창하고.
경복고를 지나서 세검정으로 상명여대 앞인데 그쪽은 또 산새가 얼마나 좋아.
놀러 갔다온 것 같애요.상가 갔다 온 것 아니고.
우리? 산책 갔다 왔어." 명쾌하고 밝은 음성이다.

"복받으신 분이야.
날씨가 얼마나 좋아. 먹거리 풍성하지. 孫이 적으니 너무 조용해서 탈이지만 들썩들썩 시끄러울 일도 아니잖아, 상가라고 꼭 서럽고 슬퍼야할 일도 아니고. 만약에 눈쌓인 겨울에 돌아가셨어봐. 사람의 일이란게 살아있는 사람들의 위주로 생각한다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고. 가산이 넉넉하다해도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수고스럽겠어. 오늘 우리는 참 구경 잘했어.
오랜만에 버스타고 나가본 길도 그랬고, 공예작가님의 솜씨있는 집도 그랬고.
아참 들어가는 입구, 돌더미들 많은데 생각나지? 
거기 꽃도 많드라. 노란꽃,빨간꽃, 붓꽃..
자기 좋아하던 토굴에서 손님 받던데 손님들도 행복해 하더라.
마당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는데 거기에 국을 끓이고 장작을 매워 바로 옆의 솥에선 밥을 해내고,마음이 내려 앉아 좋더라. 애닲은 喪이 아니니 마음을 놓아서 그랬나 봐 신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가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죽음도 가릴 수 있다면 지나친 욕심이겠지. 재해나 교통사고로 아니면 불치의 병으로 급작스레 피범벅이 되어 피눈물 빼내게 하는 그런 죽음들은 없었으면,
한 그루의 나무나 한 그루의 꽃처럼 저렇게 스러질 수 있다면,살아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집을 다녀와 탄생의 길만이 아니고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집에 들러와서도 산책다녀온 길이라고 할 수만 있다면,얼마나 정갈하고 단정한 길인가. 처음 빈 손으로 나왔던 길을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은...

형님들이 오셨다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라 산책만 다녀온 나의 상가집 동행은 거기서 끝났다. 다 저녁에 혼자 모르는 길을 돌아가지 못한다는 핑계가 있었지만,나는 거기 가보지 않아도 그닥 많이 미안하지 않고 그닥 많이 섧지 않았다. 돌아가신 그분이 일찍 사별한 남편을 따라 국립묘지에 합장으로 안치된다는 말에도 흡족하는 것은 집하고 가까운 탓도 있을까.
늘 듣고 읽고 느끼는 거지만 삶과 죽음의 길은 내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순간이라지 않은가. 정신을 놓아버린 무거운 육신을 떠나 가벼운 영혼으로 떠나셨으니 떠나셨으나 집 가까운데 계시니,훠이 훠이 가볍게 다녀가실 수 있으시려니,우리네야. 혼령이 있다고 믿으며 그 혼령과 같이 살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다만 나라가 인정한 솜씨를 가진 이제는 흰 머리 히끗히끗하신 그분이, 아이들의 영원한 동화 후크 선장이 타고 있던 상상이 일궈낸  근사한 배모양의 간판이 붙은 작업실 간판을 내리고 거기에 음식점을 하실거라는 다음 계획에 한없이 마음이 후둘거려지기만 한다.

2001.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