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여행탓이었을까?
일주일만에 출근한 하루는 다분히 길고 지루했다.
퇴근하면 곧바로 씻고 푹신한 쇼파에 몸을 맡겨 버리리라 ...
머리속에 나만의 그림을 미리 그려둔 채 퇴근을 한다.
집에 돌아와 보니 하루동안 아이들의 놀이터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집안은
온통 널부러진 물건들로 어지럽다.
여행가방을 열고 눅눅한 빨래들을 온통 세탁기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방바닥에 잠시 붙히는데 ...
눈치도 없는 딸아이는 "엄마 나 뜨끈한 칼국수가 먹고 싶어...
비가 와서 그런지 하루종일 몸이 좀 춥네"그런다.
"밥통에 밥이랑 아침에 해둔 찌개랑 그냥 먹으면 안될까?"
아이를 달래보지만 아이는 벌써 입안가득 군침이 고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무거운 몸과는 달리 나의 발걸음은 스프링이 튕겨져 나가듯 통통거린다.
냉동실에서 다듬어둔 멸치를 꺼내어 육수를 낸다.
밀가루에 식용유 두어 방울 떨어뜨리고는 소금간 약간 한 물로 반죽을 한다.
딸아이는 저도 해 보겠다며 손을 씻고 엄마 곁에 앉는다.
엄마와 딸이 한덩이씩 치댄 반죽은 어느새 도마가득 둥그렇게 원을 그린다.
밀가루 솔솔 뿌려 칼로 송송 썰어 놓으니 제법 칼국수 티가 난다.
멸치육수를 깨끗히 걸러내어 감자를 썰어 넣는다.
국물이 끓어날 무렵 칼국수를 넣고
다시 새파랗게 채썬 애호박과 파,마늘을 넣어 간을 본다.
이쁜 그릇에 한그릇씩 푸고는 여린 쑥갓잎파리를 얹어준다.
들깨가루와 매운 고추 썰어 넣은 양념장을 넣어 먹으니
그야말로 별미중 별미이다.
비오는 날에는 왜 칼국수 생각이 나는 걸까?
피곤하다 하면서도 자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말 떨어지기 무섭게 일어나
손칼국수 만들어 대령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한편 우습기도 하고
저 아이들은 어찌 그리 먹고 싶은 것도 많은 건지
모두들 두 그릇씩 단숨에 먹어대는 아이들의 키만큼이나
지금쯤 자라고 있을 마음이 대견스럽다.
멀리 출장을 가서 오늘 저녁 집에 못들어 온다는 남편이 마음에 걸려
잠깐동안 스치듯 그를 떠올린다.
아마도 내 어릴적 어머니께서 해 주시던 손맛이 나 또한 그리워서
아이들의 청을 들어준 것은 아닐런지 ...
그 맛에는 감히 버금가지 못할지라도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사랑의 느낌
그것만 전해진다면 못할것이 없을 것 같다.
휴가기간 내내 아이들의 점심 메뉴를 난 매일 다른 것으로 해 주었다.
늘상 해볼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난 무척이나 흥분되었으며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만큼 내 얼굴 어느 한켠에선 주름살이 늘어 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난 지금의 이런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만큼 소중하게 간직해 두고 음미해 보고 싶은 시간인 것일테지...
비가 오는 탓인지 날씨가 어두컴컴하여 아직 아침이 멀었지 싶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 아침 핸드폰 알람이 잠잠했다.
깜박 늦잠을 잔 모양이다.
부리나케 일어나 낮에 아이들이 먹을 짜장을 만들어 두려고 야채들을 손질한다.
눈썹을 그리다 말고는 풀어둔 짜장 소스를 넣으러 간다.
낮시간 동안 엄마 없는 빈 자리엔 아침나절 엄마의 동동거림이 남기고 간
아주 간단한 음식만이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면 또 가슴이 아리다.
그래도 이젠 이만치 아이들이 자랐으니 내 마음의 두께도 그만큼 더 두꺼워졌을 법도 한데
아직도 난 익숙해지질 않는다.
비오는 날
비를 닮아 흐려지려 하고 있는 내 마음을
향긋한 커피 한잔으로 메만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