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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전 동의 없이 식기세척기를 구입하여 분노한 남편 사건을 보며 이 부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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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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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전생이 있을까


BY 칵테일 2000-11-16



정말로 전생이 있을까


옛날에 사이가 좋은 젊은 부부가 살았답니다.

아내도 남편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지극하여, 잠시도 떨어져있기가 싫을 정도였대요.

그래서 하루는 아내가 남편에게 먼저 그랬답니다.

"여보, 우리 죽어도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좋지.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서로를 어떻게 안단 말이요?"
"아, 그거야 우리가 서로 같은 걸로 태어나면 되지 않아요?"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한 끝에 한쌍의 새로 태어나기로 약속했답니다.

그러다 남편이 먼저 죽어 새가 되었답니다.

아내도 얼마 후에 죽음을 맞게 되었는데, 아내는 그만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했는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이것 저것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내는,
"에이, 뭐였드라? 토끼? 사슴? ..음.. 새였나? 아니야. 설마 그렇게 연약한 것으로야 태어나자고 했겠어. 옳지! 호랑이다. 그래. 맞아. 호랑이야. 아무렴 백수의 왕으로 태어나야하지 않겠어?"

호랑이를 생각해 낸 아내는 틀림없이 호랑이라 확신하고는 죽어서 호랑이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먼저 죽어서 아내와의 약속대로 새가 된 남편새는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는, 새가 된 아내를 만나기위해 찾아다녔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자기를 닮은 아내새는 보이지 않았지요.

한편 호랑이가 된 아내는 아내대로 호랑이가 되었을 남편을 찾아 이리저리 산중을 헤매고 다녔답니다.

하지만 새와 호랑이가 된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만나기가 쉽지 않았겠죠.

그러다가 호랑이가 된 아내는 남편을 찾아다니느라 고단하기도 하고, 허기도 진 몸을 쉬기위해 어느 나무 그늘을 잠시 찾아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 위에는 남편새도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앉아있었대요.

처음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가 남편이 먼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 호랑이의 눈빛이 바로 아내의 눈빛과 똑같았기때문이었죠.

남편은 너무도 반갑고 기쁜 마음에 호랑이 앞으로 날아가 자신임을 한껏 알리기위해 날개를 퍼덕였답니다.

하지만 호랑이가 된 아내는 왜 새 한마리가 자기 앞에서 날개짓을 해대는 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답니다.

호랑이는 크고 새는 작았으니까요.

어쩌면 새의 작은 눈동자조차 똑바로 볼 수 없을 만큼 호랑이가 지쳤을 지도 모르죠.

결국 너무도 배가 고팠던 그 호랑이는 남편새를 잡아먹고야 말았답니다.

그리고는 그 새를 먹고난 후에야 자신이 남편과 함께 태어나기로 했던 것이 새였음을 뒤늦게 알았답니다.

**
의가 좋아서 죽어서까지도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이엔 '망각'이란 커다란 다리가 놓여있는 셈이었지요.

사랑의 맹세. 약속.
모든 것이 시작은 사랑하는 시점으로 부터 비롯되지만, 그 어느 한쪽의 망각이나 배신으로 쉽게 깨지지요.

한때 어느 정신과 전문의가 전생으로 치료를 했다는 책이 발표됨으로해서 비롯된 '전생'논쟁은 급기야 대중가요나 드라마에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여대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전생이 무엇이었나하는 것을 알아보러 이곳 저곳을 직접 찾아다니기도 하고 그랬답니다.

전생. 설령 있다고 해도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검증받을 수 없는 신비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정신과 의사는 어느 무당이 말했다는 자신의 전생의 흔적을 찾아 인도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남자의사였는데 자신이 인도의 공주였었다는 전생 이야기를 듣고, 인도에 가서 공주 옷차림을 하고 사진까지 찍어 잡지에 실었더군요.

그 의사 자신이 대학 시절 한때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 있다고 하니, 묘한 생각이 들던데요.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첨단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일종의 정신적 퇴행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먹고 살만해지면 옛날의 못 살던 시절을 향수삼아 추억해내는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고생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는 그 '고생'조차도 감미로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예전에도 못살았고, 현재도 못살고 있다면 과거의 고생이란 것은 그야말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추억일테니까요.

하지만 사람에겐 아주 이상한 심리가 있습니다.

형편이 나아지고 주변이 살뜰해질수록 풍부하고 넉넉한 추억을 갖고 싶어하는 것 말이죠.

전생에서 왕비였다는 사람이 현재 파출부를 하고 있다면 그 당사자는 어떤 심정이 될까요.

"흥. 봐라. 내가 지금은 요 모양 요 꼴로 고생을 하고는 있지만, 이래뵈도 전생엔 왕비였다구. 그러니까 날 무시하지말라구. 왜이래!" 하는 심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과거의 영화조차 현재의 연장선 상에서 붙들고싶어하는 심리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설화에는 이런 종류를 자극하는 내용이 꽤 많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 중에 이런 것도 있지요.

옛날에.... 어떤 민가에 호랑이가 나타나 자신의 어머니를 잡아먹으려고 하니까, 그 집 아들이 급한 김에 호랑이에게 그랬답니다.

그 호랑이는 전생에 그집 어머니의 자식이었다구요.

그러니까 그 아들과 호랑이는 같은 형제가 되는 셈입니다.

그 말을 들은 호랑이는 그냥 돌아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생에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그 여자를 위해 매일 고기를 잡아 집 근처에 두고가는 봉양(?)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죽고나니까 마치 사람이 그랬던 것 마냥, 식음을 전폐하고 돌아간 어머니를 부르짖으며 자신 또한 죽고말았다는 이야기죠.

단순히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 엉겁결에 둘러댄 그 아들조차 감명했다던 호랑이의 효성이란 대단한 것 아니겠어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인생은 돌고돈다는데, 아마 그 전생이란 것도 거기에 맥을 두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나저나..... 과연 전생이란 있을까요?

또, 있다면 우리의 전생은 진정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정말로 전생이 있을까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