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왔구나."
거실 쇼파에 길게 누워
고정시켜진 선풍기 바람을 맞고 계시던
아버님이 일어 나시며
때아니게 일찍 들어선 며느리를 의아해 하신다.
"예"
주방에 가득찬 햇볕이
따가운 불볕 사이를 스쿠터로 뚫고 온 내게 지레 겁을 줘서
주방 안벽에 걸린 선풍기의 선을 당기고는
사가지고 온 토종닭을 개수대에 담고 지하수를 튼다.
한참을 흐르는물에 손을 대고 있으니
얼얼하게 시려오는 손의 냉기가
서서히 온몸으로 전도 되어 열기를 식힌다.
프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나가서
엮어 매단 마늘을 쑥쑥 당겨 따가지고
큰 쟁반을 곁들어 아버님 앞에 마주 앉아 까며
한 눈치 하는 며느리는
화제를 낚시로 시작한다.
요 며칠 밤을 저녁도 안먹고 물가로 나가버린게
조금은 미안해서 시작하는 낚시얘기에
시아버지는 온종일 혼자 계시다가
때아니게 일찍 들어선 며느리가 말동무 해주는것 만으로도
반가워서
"잘 잡히대?? 어젠 뭐좀 잡았어?"하신다.
아버님의 내심까지 훤히 보고 앉은 며느리
"다 쏟아놓고 왔는데요, 다른 사람이 잡은
이만한 뱀장어 한마리는
냉장고에 넣어 뒀어요."
가운데 손가락과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일어서서 냉장고 문을 열고는
꽁꽁 얼어 있는 비닐 봉투를
아버님 코앞에 벌려 보이면서
"오늘 또 가려구요.강바람이 얼마나 션한데요
모기도 안물구, 피서가요."
"그이가 문닫구 델러 온댔어요."
늦은 밤의 염려까지 다 푼다.
마늘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 할때쯤
놀러 나가셨던 어머님이 들어 오셨다.
"저녁준비 다 해 놨어요, 차려 잡수세요,
출장간 영규도 온댔어요."
"너는? 너도 한사발 먹구가, 잘 챙겨 먹어야
다리도 덜 아프지. 웬종일 가게 보구 피곤 허지도 안남?
밤에 뭔 낚시질을 간다구...."
같이 가자고 기다릴 사람이 있어
마음은 바빠 죽겠는데
현관을 나서는 내 뒤에 어머님의 말씀이
꼬리로 매달려 한참을 따라 오고 있다.
고기를 잡자고 낚시를 가는건 아니다.
대를 드리우고 물가에 앉으면
강물에 씻긴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더운 여름밤의 피서로는 더할게 없다 싶고,
우람하게 버티고 섰던 산이
물속에 거꾸로 매달린채 옅은 물결에도
능청 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을 볼때는
수면위로 서있는 산의 속내를
훔쳐본 것 같은 착각도 들어 좋다.
이밤엔,
보름을 한참지나 많이 기울고 있는 달이
내 인생의 주기 만큼에 와 있는것 같아서
나도 덩달아 구름속에 숨었다 나왔다를 해가며
달과 친구도 하니 더 좋다.
위치만 알려주던 케미라이트 불이 훤하게 솟는다.
이미 흐트러져 있는 자세를 고치고 대를 잡았더니
고기는 벌써 밥만 따먹고 가버렸다.
랜턴 불빛 없이도 능숙하게 밥을 갈아 던져놓고
혹여 대를 끌고 가면 어쩌나 싶어
뒤에다 고무줄을 매달아 놓는다.
운동 해야지.
긴 백사장을 가로 질러 걸어간다.
모래위에 깊은 발자욱이 어스름 달빛에도
선명하게 나를 따라온다.
손뼉을 쳐가며 일행이 안보일만치 갔다가
돌아 선다.
배앞에다 대고 짝!
허리 뒤에다 대고 짝!
조용한 정적을 내 손뼉 소리가 깨고 있는가 싶어
살짝 멈추고 있어보니
나만 치는게 아니라 산도 따라 치고 있다.
어릴적 풍금 소리에 맞춰 배우던
돌림 노래 생각이 문득 났다.
내 노래만 부르면 될것을 왜 그리 옆 사람을
자꾸 따라 불렀던지.
두귀를 검지로 꽉 막고 옆 짝을 쳐다 보지도 않고
불러 대다가 노래가 끝난것도 모르고 그만....
내게도 있었던 성 싶은 시절의 기억이
스물스물 되살아 난다.
"낚시 와서 뭐 하능겨?"
동행한 사람들이 날 보고 달밤에 체조 하냐고
놀려 대며 고기 도망간다고 손뼉좀 치지 말라 한다.
머쓱해져서 별만 올려 보고 걷는데
자동차 크락숀 소리가 들린다.
벌써 열시가 넘었나보다.
어둠을 더듬거리며
그이의 랜턴빛이 강가로 내려 오고 있었다.
"열 두시까지만 있다 가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