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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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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빈 자리


BY cosmos03 2002-08-03

" 나 오늘부터 한 일주일쯤 휴가다 "
밝고도 경쾌한 목소리로 남편은 말한다.
아닌 밤중의 홍두깨라고... 일을 끝낸 그 시간에
그리 말을한 남편은 느닷없이 옷을 싸란다.

휴가라면 당연히 가족들과 어디 가까운곳에라도 다녀올줄 알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남편은
아내도 자식도 동반하지 않은채
혼자서만의 여행을 떠나려 하고있다.

" 내가 왜 짐을 싸줘야 하는데? 그리고... 혼자서 어딜가려고? "
" 그냥 알거없잔아. 그리고 나 결혼해서 처음으로 당신에게
휴가내고 떠나는 것이니 아무말 하지 말고 보내줘 "

기막혀~
정말로 기막히다는 표현외엔 달리 할말이 없었다.
더욱이 돌아오는 일요일은 자기의 생일이 아닌가?
구남매의 자기 형제들이 우르르~ 다 몰려올텐데
주인공없는 생일상을 날보고 어찌 차리며
그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총과 질문들은 어찌 감당하라고.

가정을 이루고 가장으로 사는 남정네가 홀가분히 혼자서만의 여행이 그리 쉬울수 있는걸까?
푹푹 찌는 삼복더위인데...
아내와 딸을 동반하고 함께 움직이면 좋으련만.

혼자이고 싶다한다.
아니, 홀가분하고 싶다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당신의 짐 이었단 말인가?
군더더기처럼, 그렇게 당신의 인생에 멍에로 남았었단 말인가?

어처구니 없어 말조차도 버벅거리고 있는데
남편은 재차 내게 말을 한다.
" 속옷 몇개와 셔츠, 그리고... 대충좀 싸줘 "
" 내 손으로는 당신짐 못 싸니 당신이 알아서 싸갖고 나가던지 맘대로해 "

그냥 해 보는 소리인줄 알았다.
설마~ 자기 손으로 짐을 싸서는 휴가랍시고 떠날까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로 자기의 짐을 싸는것이다.
그것도 차근차근 정성스레 싸는것이 아니라
대충 휘~익 하고는 옷 가지들을 팔목에 걸치고는 현관문을 밀고 나간다.

채 잡을수도 없었고
어디로 가며 언제 올꺼냐는 물음 조차도 할수없이
남편은 나를 너무도 당혹스럽게 만든다.

멀건히 남편이 나간 현관문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까닭모를 울분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 솟아 오른다.

우리가 정말 부부 맞을까?
저이가 왜 저러나?
누군가가 있어서 미리 약속을 하고 떠나는걸까?
어떻게 아내와 자식을 버려두고 혼자서 황망히 저리 급할까?

정말로 힘들었던 삶 이었을까?
그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잠시 내려놓고 싶었을까?
우두커니 남편이 나간 현관문을 바라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꼬리를 문다.

들어오겠지. 공연한 객기 한번 부려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테레비를 새벽 세시가 넘도록 시청을 하며
밖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귀울였으나
끝내 남편은 이 아침 이 시간까지 전화 한통화도 없다.

괘씸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 정말로 쉬고 싶은지도 몰라.
조금쯤은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은지도 몰라.
조금만 저대로 쉬게 내버려 둬 봐야지
실컷 돌아다니다가 가족이...가정이 소중하고 그리우면 돌아오겠지.

일주일을 기약했지만
어쩌면 오늘쯤에라도 아내와 자식이 보고파 돌아올른지도 모르지.
집나가면 고생이드라...역시 집 밖에 없더라.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이따 늦은 밤쯤에라도 대문을 따고
현관문 안으로 싱긋 미소하며 들어올지도 모르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아이만이 이른 아침을 먹고 사격장으로 등교하고
하룻밤 빈 남편의 자리가 썰렁하여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를 않는다.

정말로 남편은 혼자서 여행을 떠난것인데...
말 그대로 마누라에게 통고하고 떠난 휴가인데...
의심도 하지말고 잡 스러운 생각도 하지말아야 하는데.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주절거리다 바라본 하늘은 뭐라도 흩뿌릴듯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있다.
어디에서든 잘 먹고 잘자고
무탈하게 지내다가 가족품으로 돌아왔으면...
아니, 고생 찔찔이 하다가 역시 내 집이 최고야! 하는 마음이 들게 했으면...
또다시 생각으로 난 도깝을 떨고 있다.

남편이 잠시 비운 자리가...
나를 변덕스럽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