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과 동행을 하며
모처럼 내려 간김에 몇군데 들러 오리라 생각하고
그이에게 미리 언질을 해 놓았었다.
광주에서 일이 끝나면
남해안을 죽 훑어 보고 새로 생긴 서해 고속도로를
달려서 오면 족히 삼사일은 걸릴테니 그리 알라고.
그러나 그건 내 희망사항.
내려간 다음날 아침부터 아들은 언제 돌아 갈거냐며
틈틈히 내게 눈으로 재촉을 해대니
공연히 같이 왔다고 후회했지만
혼자하는 여행이라면 그이가 반대 했을테니
미리 다짐을 받지 않은 내 책임이지.
온김에 사는거나 보고 가라는 언니를 따라
죽제품으로 내 머리에 새겨져 있는 담양엘 들렀다.
죽제품 박물관에 들어서니
입구 양옆으로 화분에 심궈져서
희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 대나무를 보며
대나무로도 분재를 만들 수 있다는걸 처음 알았다.
겨울 방학이면 늘 가던
이모네 건넌방을
통째로 차지하고 들어 앉아 있던
커다란 고구마 창고(?)도 거기 있고
내가 제일 싫어하던 보리밥을
부엌 한켠 천정에 매달아 놓던
끈달린 대소쿠리도 거긴 있었다.
지금은 별로 쓰임새가 적지만
온갖곳에 필요하게 만들어져 있는 죽제품들을
구경하며 나는,
연신 나오는 감탄사를 억제하지 못했다.
죽제품의 전성기 시절 재래시장이 섰던 자리에
지금은 운동장과 공원이 마련되어
노인들이나 지역민들이 휴식처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번호표를 허리에 매고 서 있는 고목들이,
팔각정자에 신벗고 올라 길게 누운 내게
옛날 화려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살랑거리는 바람에 섞어 들려 주고 있었다.
소쿠리를 둥글게 많이 묶어서 양쪽 어깨에 걸고
머리에도 커다란 대바구니랑 구멍 크기가 다른 체랑
소쿠리 무더기가 걷는것처럼 보일만큼
잔뜩 이고 나서면
하루해가 다가기전 빈손으로 돌아 왔다는
그 좋던 시절 이야기들을.
3대째 이어지며 같은 메뉴로 유명한 식당에서
처음 먹어 보는 떡갈비를 먹으면서
부드러워서 노인들이 잡숫기 좋을것 같아
전체 틀니를 끼시고 계신 아버님 생각이 나서
가까우면 한번 모시고 와서 사드리면
잘 드실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몸은 나와 있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집에 두고 나왔구나 싶어
혼자 웃었다.
아들한테 지고 돌아오는 고속도로.
소나기가 가끔씩 나를 긴장 시켰지만
중간에 몇번씩 휴게소에 차를 세워
군것질거릴 마련하는 아들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유중 제일 좋은건
이맛이라며 너스레를 떨어대서 쉽게 집까지 왔다.
"나, 왔어요! 자기 위해서 부인 하나 데려 왔어."
"?????"
"다리 올리고 자려구 竹부인 하나 사왔다구요."
"그게 왜 나를 위한거야?"
"자기한테 덜 올릴테니
순전히 자길 위해 산거예요!!
담양엘 다녀 왔거든요.
자기,한번 끌어 안고 자 볼래요?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