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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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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80


BY 녹차향기 2001-05-16

밤늦게 혼자 끓여먹는 라면의 맛을 아세요?
지금이 12시 57분,
이제 막 늦게 라면에 계란과 김치를 넣어 얼큰하게
끓여 혼자서 후루룩 짭짭 맛있게 라면을 먹었거든요.
드시고 싶으시죠?
낼 아침이면 땡땡 불어터진 라면모양 부은 얼굴을 하고 거울을
쳐다보겠지요?

하루종일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였던지,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되자 출출함을 감출 수가 없었거든요.
하긴, 시도때도 없이 아무것이나 잘 먹는 편이라....
오늘은 스승의 날이었어요.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아 엊저녁 친한 친구네로 각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사 돌아왔지요.
피곤한 모습으로.
아마도 지들끼리 밤늦도록 소곤거리다가 늦게 잤던 모양이지요?
그러서인지 오늘은 일찍들 잠자리에 들었어요.

아참,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샐 뻔 했네요.
스승의 날이었잖아요.
해서 중학교 은사님께 전화를 드렸지요.
"선생님, 저예요."
"어, 그래. 그동안 잘 지냈고? 아이들도 많이 컸겠구나."
선생님께서는 무척 밝은 목소리로 응답해 주셨어요.
선생님!
여자 제자들은 다 쓰잘데 없지요?
선생님께 찾아가 식사 대접을 한번 하기를 할까, 그 흔한 구두티켓을 선물로 드리기를 할까, 사회적으로 출세한 제자덕을 보기를 하실까?

선생님!
언제나 반듯한 자세로 걸음을 걸으시고, 한 손엔 가느란 회초리를 들고 다니시던 모습이 어제 일인것 처럼 환하게 떠올라요.
낭랑한 목소리로 수필을 읽으시던 모습이며, 손에 분필가루 묻는 거 귀찮으시다고 늘 달력종이로 분필을 말아가지고 함에 넣어 다니셨잖아요.
저도 가끔은 분필을 예쁜 종이에 말아 선생님께 갖다드리곤 했었는데.
제가 사다드린 쓰레기통을 지금도 쓰신다면서요?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그 쓰레기통 성능이 무척 좋은가봐요.

처음 저희 학교로 전근오셨기 때문에, 아마 선생님께 필요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던 모양인 가봐요.
그렇다구 그 쓰레기통을 지금껏 쓰시면 쓰레기통 장사들은 어떻게 살아요?
그쵸?
선생님!
뭐든 줄 맞춰 가지런히 정리정돈 잘 하시고, 무슨 물건이든지 아끼고 관리를 잘 하시는 모습, 해군 출신이라서 그런다고 하셨었지만,
그런 선생님 모습이 얼마나 멋지게 보였었는지요.

사회가 혼탁하고,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에 선생님같으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리라 믿어요.
사랑으로 키워주시고, 저희 반 아이들 이름은 물론 번호까지 지금도 기억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신걸요?
열심히 살게요.
제가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게요.
그리고 되도록 주변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볼게요.

훌륭한 사회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또 선생님 기대처럼 훌륭한 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착한 며느리, 좋은 아내, 부드러운 엄마가 되려고 해요.
모습은 어찌 바뀌셨을지 몰라도, 목소리만은 예전 그대로이셨어요.
그리고 자주 전화 못드리고 일년에 딱 한 번 스승의 날에만 전화드려 죄송해요.
스승의 날이 없었더라면, 아마 선생님께 전화를 쑥스러워서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교실에서 지금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생님 강의에 귀 기울이고 있을 제 후배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주세요.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이 세상에 따뜻함을 그리워 하는 아이들이잖아요.
사모님께두 안부전해주시고요.

정말 건강하셔야만 해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 제 마음 한 구석에서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셨는지,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밤이 너무 깊었네요.
라면을 맛있게 먹었더니 이제 피곤이 몰려오기도 하고요.

그럼, 선생님 안녕히 주무세요.
아.컴 가족 여러분들도 안녕히 주무세요.
낼 아침엔 밝은 희망이 햇살처럼 한가득 여러분께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