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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상한 날입니다.


BY allbaro 2001-05-14

오늘은 이상한 날입니다.

기억의 먼지 속에 뭔가 꿈틀 거리는 것 같아서, 제법 묵은 종이 뭉
치로 변하여 가는 다이어리를 열어 보았습니다. 잠깐 잠깐씩 남겨놓
은 그 메모들에는 내 인생의 순간들이 동영상의 압축파일루 나열되
어 있습니다. 늘 편년체의 어투로요… 몇 년도 몇월 몇일 몇시에 나
는 무엇을 하여야 했고, 누구를 만나야 했고, 머리가 깨어지는 단순
한 금전적 괴로움을 겪고 있었군요. 그리고 갑자기 몰려드는 어질한
두통으로 다이어리를 접으려는 순간, 당신에 대한 가엾은 나의 사랑
을 정리하여 놓은 간단한 문장을 보았습니다.

나는 일생동안 두가지 경우에만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하나는, 비가 오는 날….
또 하나는, 비가 오지 않는날…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의 노정에서 여러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여러가지 말을 나름대로 재미나게 하려고 애를 씁니
다. 그 결과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많습니다. 웃기고 울리고
공분을 만들어 내고.. 하지만 이말을 이자리에서 꼭 해야 하는가 하
는 문제를 먼저 걸러내고 필요한 말 만을 짐을 내려 놓듯이 하나씩
발앞에 두고 조용히 돌아 서는 사람을 많이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눈빛으로 이말이 이곳에 필요할거야… 그렇게 조그
만 말의 보퉁이를 골목길 어귀에 두고 또한 말없이 길을 떠나는 삼
가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그러므로 거위나 오리의 거친 목소리로 남이 한이야기를 조금 더 큰
소리로 앵무새 처럼 말하고, 내가 무슨 이유로 낡고 시니컬한 유모
어를 하여야 하는가 하고 진지한 고민으로 필터링한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그저 버려진 말들의 틈에서, 그리고 말
도 안되는 무리한 소리들의 틈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와 따듯함
을 가지는 그런 단어의 서술이 정말 필요합니다.

나는 나의 교묘한 말로 당신을 사랑하였고, 당신은 당신의 은밀한
말로 나를 기쁘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모든 단어와 말씀들은
이제 평생을 두고 나를 조금씩 또는 때로 굉장히 강하게 부수어 버
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향기가 짙은 말들이었다면 또 그렇게 독한
말들이었다면, 그정도로 쉽게 많이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
다. 그 어두컴컴한 darkslategray 의 그리움에 갇혀 쩔쩔 매곤 하지
않을 만큼만 지혜로왔다면 정말로 정말로, 근심스럽게 말을 만들어
내었을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이상한 날입니다. 아침에 소주병의 목언저리에서
해가 뜨고 저녁에 소주병의 투박한 바닥으로 해가 가라 앉아 버렸습
니다. 가끔씩은 나보다 철없어 뵈는 사랑하는 형님과 광어회를 먹었
고 우리는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 별이 빠진
것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예전, 종로 5가의 집은 아직
별이 뜨고 지는 집이었고, 우리는 보쌈김치로 우리에게 유명하였던
그 집에서 8차째의 마지막 잔을 나누곤 하였습니다. 형님은 치매가
심해서… 라고 농담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집을 이상하게도 기억
하지 못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양볼이 터지도록 새우젖 듬뿍 찍은 보쌈을 소주의 밑
반찬으로 마시고 또 마시며 새로운 그날을 기다리던 그시간들을 통
째로 어디엔가 흘려 버리셨나 봅니다. 저도 조금 있으면 세상 모든
것을 시시콜콜 기억 하던 형님처럼 그렇게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치
매가 심해서.. 라는 억지스러운 농담을 하게 될까요? 그런 비극적인
표정으로 희극을 이야기 하게 될까요? 저는 평생 후배이므로 늘 형
님께 그렇게 꼬치꼬치 따져 물을 평생 회원권을 가지게 된 것을 다
행 스럽게 생각합니다. 형님 우리는 멋진 인생을 살아야할 의무가
적힌 노란 딱지를 발부 받았습니다. 이제 어쩌지요?

그러므로 아 그렇겠구나 하는 교훈을 하나 더 배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런 저런 마음속의 앙금과 사랑의 서러움이 틀림없이 가라
앉는다는 것을 오늘 확인 하였습니다. 그것은 심리적인 침전과 안정
이 아니라 뇌세포의 파괴에 의한 물리적인 것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법칙에 따라 흙으로 돌아가게 되겠지요. 아마도 사랑
이 남긴 상처따위를 깨끗이 잊고 말이지요…


망각의 자신감이 생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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