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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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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가 보이던 뚝방길.


BY 들꽃편지 2002-07-04

냇가가 보이던 뚝방길.

투명한 냇물이 흐르던 고향.
냇가가 보이던 뚝방길을 남동생과 이모와 똥개와 거닐던 유년시절.
고향은 이래서 좋은가보다
사소한 사진 한 장에도 추억할 수 있어 행복하니...

줄지어 늘어진 두메산골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진다.
뽕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오디도
산가장자리에 조랑조랑 달려있던 산딸기도
또랑가에 숨죽여 살던 쌔까만 머루도 먹고 싶으니...

밭고랑에 묻혀 살던 마을 사람들도 소낙비에 쓰러지던 보리밭도 모두 모두 고향이야기다.

고갯마루에 서서 내려다 보던 산골마을은 살아 숨쉬는 그림이였다.
산길에서 마주치던 땅나리꽃의 주홍빛이 지금도 선명하게 물감처럼 풀어진다.
산모퉁이를 돌면 쪼그리고 앉아 있던 볼기짝만한 메밀밭이 가난함을 보여 주었고,
비탈밭에 자라던 옥수수잎이 바람결에 우수수수...소리내던 울분이 어린 내 가슴에 남아 지금도 서럽다.

고갯마루에 서서 남동생과 손가락질 하며 보던 아버지가 묻혀 있던 앞 산 공동묘지.
우린 무슨말을 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를 공동묘지에 묻어 놓고
엄마는 우리들을 외갓집에 맡겨 놓고선 서울로 돈 벌러 떠나신것이 원망스러웠다.
난 그랬었다.어린 우리들을 놔 두고 엄마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정스러움, 단란함, 그런 건 실감하지 못했다.
가난도 외로움도 불편함도 이길 수 있었는데
엄마가 보고싶어서 해질녘까지 고갯마루만 쳐다보다
터덜터덜 외갓집으로 걸어왔던 기억이 나리꽃의 주홍빛처럼 선명할뿐이다.

고향 마을은 산골치고 물이 풍부했던 냇가가 있었다.
깊은물 밑바닥이 훤하게 보이던 투명했던 냇물.
냇가가장자리엔 잔디밭이 넓다랗고 돌작밭이 또 그만큼 넓었고
저 아랫쪽으론 하얀 모래밭이 우리마을 논보다 넓었었다.

홍수 피해를 최소한 줄이기 위해 뚝방을 쌓았는데
뚝방가엔 풀꽃이 계절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곤 했다.
7월엔 패랭이 꽃이 내 허리깨에서 동그랗게 피고
달맞이 꽃이 밤마다 달을 보며 노랗게 빛나고
개망초꽃이 끈질기게 밟아도 피고 뽑아내도 피고 잘라내도 피어 났었다.

친구보다는 남동생과 막내이모와 똥개와 뚝방길을 걸었다.
물놀이를 하려고 그 길을 걸었고
빨래를 함지박 가득 이고 그 길을 걸었고
소를 모시고 오려고 그 길을 걸었다.

풀잎 한 줄기 뽑아 입에 물고
들꽃 한송이 꺾어 손에 들고
똥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동요를 중얼중얼 부르며 뚝방길을 걸었었다.
한낮엔 냇가에 뛰어 드느라 걸었고
해질녘엔 빨래나 풀밭에 묶어둔 소를 데려 오려고 걸었고
아무도 안보이는 오밤중엔 처녀인 이모가 목욕하는데 ?아가느라고 거닐던 냇가 뚝방길...

가난했어도 불편했어도 사는 게 다 이런거구나 했었다.
강원도 두메나 산골엔 누구나 가난했고 불편했으니까.

아버지가 묻혀 있던 앞 산도 무섭지 않았고
산고개를 넘어 학교를 다녔어도 힘들지 않았고
감자 넣은 꽁보리밥만 먹었어도 배가 불렀었다.
산골마을엔 누구나 어렵고 힘들었으니까.

들꽃 한송이 꺾어 들며 흐드득 웃었던 나.
곤충 한마리를 잡아도 가슴이 뿌듯해 보였던 남동생.
냇가에서 개헤엄치고 노는 것이 행복했던 어린시절.

뚝방가를 같이 거닐던 이모는 50을 넘겼고
동생들은 나처럼 중년이 되어, 만났다하면 고향이야기에 잠을 설치곤 한다.
그리 좋은 어린 시절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좋은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