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오류
들녘의 끝자락에 여기저기 거인처럼 웅크리고 있는 새벽의 검은숲
틈으로 살색 크레용으로 그어놓은 듯한 길을 따라 안개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발 아래 꽃가루 처럼 날리는 조안 서덜랜드의 소프라노
입니다. 그리고 발꿈치를 잡고 있는 안개 너머의 그림자 진 사랑입
니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도 않고, 탄식의 농도가 위험 수위인 눈물에도
점점 더 처연히 선명한, 그 사랑이 남긴 자욱에는 차마 어쩌지 못할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려 있습니다. 때로 거미줄 같이 섬?한 그 무
지개에는 다시는 돌아 오지 않을 젊은 날의 귀한 시간들이 이슬처럼
칭칭 동여 매어져 있습니다.
[중략]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것은 원죄와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것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신의 축복이 아니고 어쩌면 신의 저주 일지도
모릅니다. 완전한 사랑이 있다는 희망은 그의 앞잡이 입니다. 원래
그런거야! 하는 체념은 사랑의 해결사 쯤 되나요?
누구나가 다 아는 그리고 몇번씩이나 겪은 그일에, 또 곁에서 화살
을 맞고 괴로워하는 친구를 달래 준 적도 있는 멀쩡한 바로 어제 그
사람이 오늘은 또 다른 희생자가 됩니다. 사랑 자체가 결정적인 결
함을 가지고 있고 또한 보증서 따위도 없고 보험도 물론 되지 않습
니다. 그리고 그 중독성 강한 사랑 자신 이외엔 어떠한 것으로도 대
치 될수가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치명적인 오류지요.
시간은 서쪽으로 지고 사람은 동쪽으로 떠납니다. 언제인가 스쳐 지
나면 각인된 슬픔만 되새기게 되겠지요. 나는 남아 있고 사랑은 길
을 떠납니다. 때로 돌아보며 멈칫 거리지만, 이별은 늘 철길을 따라
떠나므로 절대로 절대로 다시 마주칠 일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헤어짐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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