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주차장에서 멍하게 바라 본 높은 하늘.. 서산에 지는 저 태양은 자기의 하루 임무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까지 내 뿜는 붉은 빛까지 잃지 않았는데.. 분명 붉게 보여야 할 서산 노을이 한 가닥 생명 줄에 연연하는 나로썬 노랗게 느껴지고.. 지금 나로썬 도저히 장거리 운전을 해서 영덕 집까지 가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검사를 받았던 육신보다 정신적으로 더 망신창이가 되었으니.. 두 다리를 쭉 벋고 머리가 텅 빈... 공허 속으로 털석 주저앉았다. 가방 속에서 연거푸 폰이 울린다. “형님! 나 KS예요. 병원 측에서 뭐 라고 합니까? 결과가 궁금해서...“ 서울 S병원 N간호과장의 초조한 목소리가 전해오고.. 정신을 좀 차리고 경황을 설명했더니.. “형님. 두말 말고 급히 서울 오라오세요.” 하지만 그 먼 서울까지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진행될 일이 아득하기만 하고.. 걱정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N과장은 그럼 담당 의사의 이름을 대라고 하네. 잠시 후.. 서울 병원 그 곳에서 알아 본 결과.. 대구의 Y대 병원 L박사는 유방암의 전문의로써 우리나라에도 유명하므로 정히 서울까지 곤란하다면 형님 뜻대로 그 곳에서 수술하시라는 의견을 보내주었다. 헌데.. 암이란 이름의 병명으로 너무나 놀라고 당황한 아들놈하고 우리 아이들이 야단 방구 통이 났다. 의료진 좋은 서울 병원을 두고 무엇 땜에 대구에서 수술을 하느냐고.. 하지만, 경비도 문제지만 간병인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 먼 타향에서 큰 병을 다스리기엔 너무나 힘겨울 것 같았다. 그래서 대구에서 수술을 받겠다고 서울에 연락을 주고.. 놀란 심장을 다스리지 못했기에 그 날 밤 대구에서 머물고.. 벌써 3일째 한 숨의 잠도 취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음식 한조각도 가까이 하지 않은 상태에서 봄날의 짧은 그 까만 밤을 끝내.. 마음 졸이면서 태우다가 뽀얀 새벽을 맞이하는데.. 대구에서 수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만일에... 만일에 말이다. 대구의 의료진과 병원 측의 시설에는 아무 부족함이 없는데... 나의 병이 너무 나쁜 상태까지 가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수술 결과에서 희망을 잃게 된다면.. 아둔한 우리 아이들.. 틀림없이 죄 없는 의사와 병원을 원망할 것이고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지어미를 서울로 다시 데리고 갈 사실이 확연하니.. ‘모두가 서울, 서울이 좋다고 하니.. 그래.. 자식들이 이렇게 원하는데 자식들 한이라도 남지 않게... 그 소원 못 들어 줄까...‘ 새벽이 밝아 오기가 무섭게 서울 N과장 아우님에게 서울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마음을 굳혔더니.. 참 잘 생각했다면서... 강남 S병원 부원장이시고 유방암으로서 그 명성이 인터넷까지 널리 아려진 Y박사님에게 내일 진료를 받게 예약을 했다고 급히 상경하라고 하네.. 50평생을 살아오면서.. 지친 생활에 진저리가 나서 늘 입버릇처럼... “이 놈의 생명줄 캭! 죽어버리면 좋으련만.” 수 없이 울부짖었는데.. 이젠 내 삶의 2/3 끝자락에 이미 서 있건만.. 죽음 앞에서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이것이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이란 말인가? 중국 대륙에서 거칠게 불어 다친 황사현상은 모던 비행기가 그대로 멈추어 버렸고... 서울로 가는 먼 장거리 여행은 육신보다 정신적으로 지친 나를 더 힘들게 하고.. N과장아우님의 도움으로 도착 즉시 진료를 받았고.. S병원에서도 대구 병원 측의 자료를 검사하더니 “암이 확실합니다. 수술할 검사를 2일간 하고 OK 사인 떨어지면 곧 바로 수술합시다. 수술결과 2~3일이 지나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할 말은 못합니다. 왜냐하면요, 우리 의사들도 수술하지 않고는 그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깐..“ 아~~~ 그렇구나. 살고 죽느냐의 문제가 아직은 미지수로 남아있지 않은가! -'하늘에 있는 엄마야! 나 어떡해.. 나 아직은 더 살고 싶은데.. 엄마 곁이 아닌, 이승 개똥밭에서 좀 더 뒹굴고 싶단 말이야.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가파른 자갈길을 걸어 온 이 여식인생을 훤히 다 보았잖아! 40 초반에... 그 사람 저승길 서둘기에 명주 옷 한필 감아서 허무하게 보내고.. 그 사람 병원비 빚진 상태에서 잘 산다고 늘 자랑한 혈연들도 있었지만 그 도움 청하지 않은 체.. 코흘리개 철없는 어린 자식들.. 남이 받는 교육 다 시켰고.. 민들레 홀씨 되어 제 갈 갈길 다 찾아 주었는데.. 이젠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 볼 능력도 좀 갖추었는데.. 날 보고 이 세상 소풍 나들이 접으라고? 나.. 인생 살아오면서 큰 죄짓지 않았다면 살 수 있는 기회 한 번 더 주면 안 될까.....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게... 엄마~~~~~~~~. 나.. 좀 더 실면 안 될까요?'- 첫 돌 지나면서 병으로 잃어버렸던.. 아무 것도 내 기억에 없는 엄마를 내 인생 처음으로 불러 보았다. 4월 18일. 수술검사가 통과되고 입원실이 잡히면서 상경해서 4일 만에 입원하고 그 다음 날 바로 첫 시간에 수술을 하였는데... 그러니깐... 3월18일 포항 S병원에서 게실 염으로 대장수술을 2시간 40분하고 꼭 한 달 만에 다시 유방암으로 인하여 수술이란 길을 밟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이런 운명을 두고 참 기구하다고 말하는 가 싶다. 수술실 그 곳은... 장중한 문을 몇 군데 통과하고 있었는데.. 꼭 저승사자한테 붙잡혀서 지옥문을 구역구역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이 뇨자... 한 5년 동안 인터넷을 하면서 수많은 사이버님들을 만났는데.. 그 많은 인연 중에도 *아줌마 닷컴*에서 인연 고리를 많이 맺었고.. 지금도 물론 다른 사이트에서 만난 많은 인연도 소중히 연결하지만... 수술실에 실려가면서... 이 뇨자 양쪽 손을 꽉 잡아주면서 아무 걱정 말라고.. 격려하는 백의 천사..두 여인.... *아 컴*에서 만난 소중한 아우님들.. 오른손은 너무나 오랫동안 깊은 자매 정을 나누었던 N간호과장. 왼손을 잡은 그 백의천사는 엊그제 까지도 잘 모르는 초면인데.. 예전부터 *아 컴*에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전 번에 만날 기회를 놓쳤다면서 이 번 기회에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갑다면서 그 전날 N과장 사무실에서 아름다운 자태로 소개를 하던 수술담당 J과장이었으니.. 그 많은 후배간호사를 제쳐두고 둘이서 나를 수술실로 데리고 갔었고... 그리고 수술 할 의사선생님들께... “부탁한 사랑하는 형님입니다..” “ 아~그래요? 우리 함께 최선 다 해 봅시다구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전쟁터에서 백만군사를 얻은 것 보다 더 힘이 나더라. “형님. 한 시간만 꿈 속 여행하세요. 그리고 꼭 이 동생들이랑 함께 하는 꿈을 꾸셔야 합니다.“ 언제쯤인가... 얼마나 시계바늘이 달음질 했는가.. 그녀들이 부탁한 그 꿈길을 걸은 기억이 정녕 없고... 눈을 떠 보니... 회복실에는 수 많은 환자들이 수술한 후 회복을 기다리는데.. 내 옆에는 우리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엄마. 괜찮아? 담당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수술도 성공적이고 수술한 종양을 검사해 봐야 확실하지만 지금으로썬 아무 곳도 전이되지 않았다고 해. 엄마. 엄마... 정말 고마워. 오래 오래 우리 곁을 떠나지 마.. “ 우리 아이들 깨어 난 나를 붙잡고 울고 있지 않은가.. “그래... 엄마도 너희들과 아직은 같이 하고 싶어“ 마음속으로 나 역시 울고 있었다. “형님. 끔 길 걸으면서 우리들 꿈꾸었어? 두 백의천사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활짝 웃고 서 있었다... 내 어찌... 너희들 백의천사의 사랑을 평생잊을 소냐... 잊지 못하고 말고... ps; 이 뇨자의 졸필에 많은 격려를 주신 “에세이 방”님들! 넘 넘 고맙고 감사 합니다. 님들의 힘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다시 방석을 깔 수 있었고... 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그 마음만으로도 그 무엇보다도 귀한 만병통치약을 얻는 기분입니다. 아직은 치료중이기에.. 약물치료가 많이 힘들고 어렵다는... 그 암에 대하여.. 살아가면서 이 뇨자가 겪는 체험담을 쓸까 합니다. 님들! 언제나 건강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는 점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