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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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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


BY 칵테일 2001-05-04

사람들은 자연(自然)을 동경한다.

대도시의 각종 첨단의 시설과 기능을 무시로 이용하면서도
그들은 정작 자연의 풀내음, 새 울음소리... 바다나 강이
있는 풍경을 그리워한다.

내 몸이 몸담고 있는 곳에 대한 강한 부정은, 자신이 갈망
하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이상을 꿈꾸게 함과 같이.....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한번도 전원(田園) 생활을 해본 적 없는 사람조차도
때로는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고 싶어하니까.

그렇게 떠난 낯선 곳에서도 역시 다를 것없는 똑같은 사람
들이 보인다.

그들도 도시를 꿈꾸며 가끔은 도시로의 탈출을 원할까.

순박함과 천박함, 고상함과 교활함이 교묘히 교차하는
그 어느 지점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모습을 요령껏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본래의 모습을 상상
하는 것을 좋아한다.

천박함과 교활함은 그 특징상 모두에게 외면당하지만,
사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교활함을 현명한 "처세"라 교묘히 포장
하기를 좋아하며, 천박함 또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도 모르게 몸에 슬슬 배어간다.

이 모든 것들, 자연을 동경하면서도 몸에서 멀어진 이
부자연스러운 환경들이 어쩌면 우리에겐 이미 너무 익숙한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사실조차 이미 너무 "익숙한" 사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내 어린 시절에 여자가 40 이 넘으면 거의 할머니가
되는 줄 알았다.

머리에 허름한 수건을 쓰거나, 엉덩이와 앞부분이 아예
모호한 자글자글한 고무줄 바지가 평상복이던 내 어린
시절의 아줌마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나이래야 고작 지금의 내 나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결코 늙었다고만은 볼 수 없는 사람
들이었는데 난 그들이 너무 늙게만 느껴졌었다.

함부로 큰소리로 악다구니를 쳐도 조금도 창피해하지 않던
사람들.

아무데서나 아이를 야단치고 때리고, 또 그 곁에서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고 울던 꾀죄죄한 아이들....

이 흩어진 영상들이 왜 아직도 내 뇌리속엔 그대로..
아니 그 원형 그대로 잊혀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헐거운 삶의 고리를 "삶의 진정한 모습"인양
자기 멋대로 형상화시키기를 좋아한다.

시골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그 호젓함을
삶의 여유라 생각하듯, 다소 느릿하게 살아온 도시 밖의
삶을 그들은 웬지 동경하고 또 의미를 부여하려 든다.

그렇지만 나는 대도시가 되었건, 전원이 되었건 그저 내게
익숙한 것만이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나는 시골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면 기본적인 부분
(화장실, 샤워...)에서부터 곤혹을 치뤄야 하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으로 남게 되니까.

그저 머리속으로만 동경하는 자연이란 그야말로 얼마나
우습고도 허망한 허상이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함부로 자연을 동경하지만은 못하겠다.
당장 산에서 길을 몰라 헤매 눈물 범벅을 했던 기억이
내 머리속에 먼저 떠오르고, 어둡고 침침한 부뚜막옆에서
하염없이 솟구쳐나오던 군불땐 연기도 두렵다.

그러나 내게 익숙해진다는 것이 또 무엇인가.
그런 것들 또한 내게 이미 익숙해진 그 무엇이었다면 그
또한 나의 편안함의 근본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결국은 살아있는 현실의 나를
중심으로 익숙해져야, 그것이 비로소 편안함이란 달콤함을
안겨준다는 생각을 한다.

익숙한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에게 편안함
과 안락함을 주는 기본이다.

행복이란 아마도 그 익숙한 것들로 인해, 서툴지 않게
능숙한 솜씨로 엮어가는 농익은 익숙함의 결정체는 아닐까.

사람은 그 익숙한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잠시의
일탈로 여행을 떠나고, 그렇게 떠났다 돌아온 여행에서의
귀향은 또 다른 시작을 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니까.

아마도 사람들이 자연을 동경하는 그 마음 밑바닥에는,
익숙한 것들로부터 영원히 격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절실해서는 아닐까.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