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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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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암! 열무는 날 세상에 없는 부자로 만들었다.


BY jks0711 200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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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종하고 일주일이면 두 장의 나비 날개같은 떡잎이 나고 다시 일주일이면 야들야들하고 꼬실꼬실한 연초록 잎이 '나, 열무요'하고 나온다. 삼주째 되는 날에는 '날 좀 솎아서 먹어주세요'하고 미소지으면 난 이걸 캐어 내 깨끗이 씻어 그냥 된장도 찍어 먹고, 팔팔 끊은 소금물에 살짝 데쳐 마늘 소금 참기름에 무쳐도 먹는다. 가끔은 파마늘 다짐에 된장고추장 무침도 그 맛이 일품이다.
지지난 주에는 선 선생, 지난주에는 정 선생에게도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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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오전에는 결명자 모종과 야생들깨, 생강을 심었다. 점심을 먹고 국화의 줄기를 전정가위로 잘라 바위틈새로 꺾꽂이를 한참하고 있는 중 예고도 없이 찾아온 최선생 친구가 교회 봉고를 몰고 들이닥친다.
교회 여신도 분들과 올망졸망한 아이들.. 마당 가득 찬다. 바람쐬러 청옥동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모양이다. 첨 보는 사람들이지만 별 볼것 없는 석가헌에 찾아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머리 숙여 인사하게 한다.

무등산아래 넓은 초원을 뛰노는 사슴목장 구경하고 애들에게 이 꽃 저 꽃 이름 얘기해 주고 어른들에게는 따뜻한 차 한잔으로 대접하지만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어 주인 맘은 영 서운하다.
퇴비 포대를 꺼내들고 열무 밭으로 갔다. 구멍이 숭숭 뚫리긴 했지만 너무나 씩씩하게 잘 자란 열무가 '나 여기 있소'한다. 손만 대면 꺾어질 듯하여 물을 뿌리고 흙을 적셔 조심스레 지면까지 두 손가락에 살며시 힘을 주어 쏘옥 올리면 뽑혀 올라온 열무 잔뿌리까지의 맵시는 늘씬한 고깔모자처럼 정말 좋다.
찾아온 네 가족이 나눠먹을 수 있을 만큼을 신문에 쌓아 가슴에 안기니 그나마 서운한 마음이 조금 가신다. 많이 먹어 맛이랴.

'이거 어떻게 해서 먹어요'라는 말에 별거 아니지만 젊은 아낙들이 저렇게 벌레먹어 구멍 숭숭 뚫린 열무를 잘 먹어줄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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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상추, 쑥갓, 돌나물, 깻잎 등을 따고 무 잎을 속은 듯 뽑아서 일주일 찬거리를 챙겨 들었다. 최선생은 그 틈에 장미 꽃을 전정한 후 다섯송이 달린 다발을 내게 선물한다. '생일축하해' '에게~. 고마워. 피익'하고 웃는다.
그리고는 다시 퇴비 비닐 포대를 펼치고 다 큰 듯한 열무를 두 두름 감아 들었다. 하나는 물김치를 담아 볼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든 만나서 반가운 사람이면 그저 주고싶은 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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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닿아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동호동문 14층에 사시는 노부부를 만났다. 첫 입주 때부터 한지붕(?)에서 함께 생활한 참 부지런하신 이 할머니는 아파트 노인당의 여자회장님이시다. 할아버지도 아주 잘 생기시고 점잖으신 분으로 서로 좋은 감정으로 사는 진짜이웃이다.
'할머니, 이거 제가 기른 열무인데요 가져다 드실래요? 어느 분이든 드리려고 가져왔어요'라고 내미니 '아이고 부지런한 선생님이 직접 이걸 키웠어?'하시며 열무를 보시더니 '이건 완전 무공해 식품이네'하시며 할아버지와 함께 연신 웃으신다. 고추 갈아 놓은 게 있으시다며 김치 담아 먹어야겠다 말씀하시니 되려 내가 더욱 고마웠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웃음이 하루의 피곤을 풀어주고 내게 기쁨이 넘치게 했다.

덕분에 찹쌀 풀 쑤어 마늘고추 갈아 열무물김치도 담고 날밤 꼬박 세어 글도 쓰고 책도 봤으니
'열무야! 차암 고맙다. 내가 이렇게 부자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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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카페(cafe.daum.net/js071)에 오시면 자료실의 "석가헌일기"를 보시면 주말이나 휴일에 하는 일을 알 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