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이
집을 나갔다 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고
막내는 겨우 일곱살인데
그 아이들을 두고
엄마가 집을 나갔다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 살까요?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스물다섯에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시골에 들어왔습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굳은 농사일 마다않고 억척같이 일하며 살았습니다.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며
13년을 전형적인 촌아줌마로 살았지요.
가끔 아이들 소풍이나 운동회가 있을 때,
어쩌다 모임이나 외출이 있을 때면
곱게 화장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화장도 평소에 다듬던 얼굴에나 잘 먹히지
로션도 안 바르던 얼굴에 억지로 칠해 놓은 파운데이션은
그녀를 더 촌스러워 보이게 하곤 했지요.
아이 같은 반 엄마들 모임이 있을 때는
기 죽기 싫다며 가지고 있는 악세사리를 총 동원해서
귀걸이, 목걸이, 반지 따위를 걸치고 가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나 의미를 두지 않지만
그런 심리를 이해 못 할 것도 없지요.
이미 중년이라 할 수 있는 나이긴 하지만,
맨날 땡볕아래 호미질 하던 그을린 얼굴이긴 하지만
왜 예뻐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왜 여자이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던 그녀가 지난 겨울, 우연히
다단계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결혼 전에 물론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만-
십수년만에 온전한 자기의 수입을 가져 본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분명 흥분해 있었습니다.
첫달에 130만원이라는 돈이
통장에 입금되었더라고 전하는 그녀의 말투엔
자부심이 묻어었었지요.
그 후로,
그녀는 매일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에 지부 사무실을 낸다고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그녀는 변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났겠지요.
칭찬해 주는 사람, 이쁘다 말해 주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일하면서 인정도 받았겠지요.
그러면서 아마도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보았을 겁니다.
무뚝뚝하고 별로 애정도 없는 남편,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남편,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해서
마누라 힘든 지는 돌아볼 줄 모르는 남편.
그런 남편과는 다른, 어떤 사람을 만났던가 봅니다.
그래서 떠났나 봅니다.
그 남자와 함께 갔다 합니다.
이 글을 쓰기로 생각하고
첨에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시골에는 그런 일이 흔하다'고.
그러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경제수준이 낮은 부류에서,
농촌만이 아니라 도시 빈민촌에서도 흔하다'고.
그런데 그 집은 그리 가난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농촌살림 중에서도 부농에 속하는 사람이었지요.
그래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로 했습니다.
'자기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집은 우리보다 돈도 많았습니다.
땅도 아주 많습니다.
농사를 백마지기 정도 짓는 집입니다.
그렇지만
전 그 집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전 그녀보다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삶의 여유를 주진 않습니다.
마음의 여유,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리의 삶에 여유와 윤기를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린 돈이 없지만 가난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영화관에 한번 가는 것도 어렵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다가
아이들 다 자는 밤, 남편과 같이 보면서
우린 행복합니다.
남편이 나를 위해 사다준 시집을 읽으면서
난 행복합니다.
둘이서 같은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렇게 홈페이지가 있어서
같이 글쓰고 들여다보면서 즐거워합니다.
이런 사소한 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린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함께 걸어갑니다.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녀,
제가 그녀의 옆집에 사는 일년 반동안
그녀가 책을 읽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부부가 같이 영화 한편 보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신문도, 인터넷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녀는 일과 아이들과 남편 속에 묻혀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일을 지겨워했고
아이들을 부담스러워하며 살뜰히 볼봐 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새삼 생각했습니다.
'나를 안으로 채우는 것,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존재감과 자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입니다.
'내'가 없을 때,
'나에 대한 자부심과 존재감'이 없을 때,
'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때,
나의 삶은 위태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나'는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나의 뿌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십수년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는 자신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나간 새로운 세상에서
작은 바람을 만나 그렇게 크게 흔들렸나 봅니다.
그 남자에게서 역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그녀는 이제 흔들려 어디로 갈까요?
빨리 돌아와서 아이들 곁에 뿌리를 내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아있는 아이들이 참 안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