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때이른 더위가
여름을 실감나게 하는 아침.
밤새 열어놓은 창문을 반쯤 지그리며
웅크리고 깊은잠에 빠진 그이에게
이불을 끌어다 덮어준다.
새벽시간까지 티비앞에서 남자들끼리 뒹굴더니
나는 벌서 일어나 이침준비를 끝냈는데도
이방저방 널부러져서 오밤중이다.
어제 딸들과 여행을 떠나셔서
어른들이 안계신 집안.
맘놓고 자유스러운 아들둘이,
티비 리모컨을 손에서 놓질않고 온종일 돌려대더니
저녁 늦게 들어온 그이가
마라톤 주자들이 옮겨받는 바톤처럼
리모컨을 아들에게 옮겨 받아서
손에 붙여놓고 눌러 대고 있다.
어른들이 계실땐 모르고 지냈으면서
모처럼 자리를 비우시니까 자유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역시도 어딘지 모를 편안함으로
아버님이 늘 해주시던 걷어다논 빨래를 갰다.
대전에서 놀러온 조카까지 보태서
늦은 밤토록 큰소리로 웃으며 떠들다가
시장하면 주방엘 들락 거리다가...
아침에 보는 거실이
밤새 자유스럽게 지낸 흔적으로 요란하다.
웃옷을 홀랑 벗어 제끼고 잠든 작은 아들,
갓난아이때부터 솜털이 유난스레 많더니
배꼽근처까지 검은털이 숭숭 보여서
이불을 끌어 덮어 주며 대조적인 노란머리를 쓰다듬는다.
납짝하게 엎드려서 자는 모습까지
내 옛모습을 닮은 큰아들,
실크같이 연한 피부가 볼을 부비면 참 좋아서
허리를 구부려 볼을 대는데,
"엄마?"
팔이 목을 감싼다.
"나 가게 갈거야."
"네, 다녀오세요!"
한덩치 하는 조카녀석이 형의 침대 밑에서
아무렇게나 입었던 채로 잠든 모습이 귀엽다.
식탁에 밑반찬을 늘어놓고
김치를 새로 썰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어머님이 계셨으면 그냥 나와도 되는 준비를 해놓고 나오면서
어제저녁 잠깐 편안했던 마음이 부끄럽게도
나는 어느새 어머님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있었다.
머리를 나가기 좋게 출구로 놓으시고
바구니에 생수병을 담아 놓으셔서
며느리가 키만 꽂으면 출발 할 수 있도록
늘 해주시던 스쿠터를,
돌릴 수 없어서 뒤로 나오느라
한참 시간을 더디면서
아버님이 안계시니
오늘은 청소기도 쉬는날이란 생각을 한다.
남자들만 넷을 이방저방 흩어놓고 나오는데,
잇사이에 끼인채로 다니는 고깃점처럼
개운치 않은 맘을 어쩔 수 없다.
여름의 아침을 귓가에 날리며
길다랗게 폭을 잘라놓은 다리위를 달리면서,
한뼘만큼 넓이로 내려뵈며 흐르는 강물이
다리 길이만큼 꽉 차서 흘렀으면 싶어서
저만치 멀리 하늘을 보지만
그저 파랗기만 하면서 오늘도 맑음이다.
마늘이 가물어서 밑이 들지 않는다던
시골 아저씨 푸념 소리가
바람에 섞여 헬멧속으로 파고든다.
스쿠터를 타고 나오는 여름 아침.
다리끝을 휘돌아 나오는데,
하얀밤꽃이 산 곳곳에 큰점을 찍어놓고
파란 하늘볕에 풋여름을 익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