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석이에 이어 세라가 두 살 때,
어느 토욜날 오후
-이쁜 우리 애기..
라며 세라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는 데 오른 쪽 귀 위가 물렁
거리는 거였다.
-엥? 아니 왜 여그가 물렁거리지?
나는 급하게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선 아이를 데리고 병원 응급실
로 갔다.
-뭐, 토하거나 기절하거나 그런 적은 없지요?
-넹
-뭐 그럼 넘어져서 물이 잡혔나부죠. 사진이나 한 번 찍어 보져.
남편은 나보고 그것 보라며 괜히 왔다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세라 머리를 찍은 사진을 보니까 금이 갔다며, 급하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레지던트가 겁을 주었다.
곧바로 세라를 기절(마취) 시켜서 다시 정밀 사진을 찍고,
나는 얼마나 떨었던지 얼이 다 빠졌었다.
다행히 그냥 금만 갔기 때문에 입원하여 치료하라는 말씀을 하느
님 말쌈처럼 여기며 급하게 입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입원실이 없어서 신경외과가 아닌 일반외과, 그것도 남자들이
다섯명이 쓰는 곳으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남편은 찝찝하다며(?) 자기가 밤을 세우겠다고 했지만,세라는 나
만 붙들고 울고 불고 하였다.
하긴 거기 있던 아자씨들은 더 괴로워 했다.
어색한 밤 시간, 불을 끄고 세라 곁에 쪼그리고 앉았으려니깐,
드르렁,,푸파,,뿡붕,,빠드드드ㅡㄱ
말도 못하게 시끄러운 그 속에서 나는 날밤을 세웠다.
아자씨들은 앉은 채로 소변을 봐야 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나땜에 무척 괴로워(?)하셨었다.
다음 날, 의사선생님이 오셔서 세라 머리를 반통(?)만 밀고,
머리 속에 고인 피를 뺀 다음 붕대로 친친 감아 놓았다.
영락없는 중환자 꼴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에고, 어린거시..불쌍타..
를 연발하며 지나다녔다.
날라리 환자였던 터라 별 불편은 없었는데, 병원 원무과에서 내
게 전화가 왔다.
-아저씨가 애원 하시더구만요. 이 인실 나왔는데 옮기세요.
-??
음, 이제 아자씨들이랑 조금 적응이 되었는디..
결국 방을 옮겼구, 다 나아서 낼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놓고 희희 낙낙하던차,,
세라가 독감에 감염되어 버렸다.
그래서, 독감땜에 자그만치 오일이나 더 고생하고 나서,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 때 그 이인실에 들어 왔던 어떤 날나리 여고생을 (밤새 삐삐
치고, 애들 들락 거리고, 집 나와 카페 아르바이트 한다던 그 여
고 중퇴생땜에 나도 덩달아 잠을 못자 화가 무지 무지 하게 났었
다.) 보면서 자식 잘 키워야지..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까,
자식이 어디 부모 마음대로 되는 거든가.
그 여고생 부모,
아프니까 전화한 딸을 위해 새벽길을 달려 왔었다.
-이이그..자식이 몬지..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자식이 도대체 뭘까?
내가 한숨 쉬며 애들이 자주 앓는다고 우는 소리를 하면
남편은 그래도 우리는 끊임없이 병원 들락거리며 희망없는 병으
로 고생하는 많은 분들보다야 낫다고, 그렇게 위로해 주곤 한다.
그런가?
아무튼 애들 땜에 나는 전국적으로 병원 구경도 참 많이 한 셈이
다.
그거 아시져?
설 보다야 병원비도 지방이 싸다는 거요! 입원비도 싸답니다요.
그리고 더 친절하지 뭡니까?
진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