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일간지에는 한 뽀글머리의 노친네가 컴퓨터를 앞에 끼고 자판을 두들겨대는 삽화가 실린 코너가 매일 연재된다..
그의 코너를 즐겨보는 이유는 그의 박학다식함과 그 엄청난 정보 수집력에 놀라서가 첫번째 이유이며.. 그가 현 세태를 잘 꼬집어서 시기적절한 말들을 매일 매일 올린다는 것이 그 두번째 이유이다..
며칠 전에는 "인문학의 反旗"라는 글이 그의 코너에 올랐다. 아무 시잘데기없는 인문학 전공자로서의 설움이 누구보다도 깊었던 터라 유심히 코너를 읽었다.. 물론 지방 삼류대 비인기학과에 여자라는 꼬리표, 그리고 실력의 부재라는 꼬리표를 달기는 했지만 내는 곳마다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끝내 지금의 남편을 만나 평생 취업이라는 내가 세상에서 젤루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허구한 날 들으며 사는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그 설움은 새록새록 내게 사무친다..
그가 글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최근 100개 대학 인문학과 교수들이 시장경제논리가 대학에까지 확산되어 학문의 근원인 철학, 종교, 문학, 예술, 역사분야를 왜소화시켜왔다고 말하며 실용성의 잣대로 대학 운용의 기준을 삼아서는 안된다는 지성의 반기를 들고 나왔다고 한다..
작년도 서울대 인문계통 박사학위 취득자중 취직을 한 사람은 10명중 3명꼴이라는 익사직전의 인문학의 실상이 국정감사에 보고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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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 3학년을 다니던 때, 나는 교환학생으로 독일을 가게 되었다..
독일에 있던 두 학기동안 내가 만난 독일의 대학생들은 모두 활기에 찬 노랑색을 띠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목표가 있었으며, 그들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을 충실히 가기만 한다면 그들은 그 목표에 마땅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했던가...
대학과 대학 졸업후의 진로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대학생들은 고뇌와 방황의 상징인 푸른빛을 띠곤했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학생활또한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독일에서의 일년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그리고 다니던 학교를 끝까지 마쳤다.. 하지만 졸업후 나를 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취업이 안되자 다시 한번 독일 유학의 꿈을 꾸던 나에게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이다.. 지금은 이래도 언젠가는 다시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인문학이 쓰일날이 온다..그치만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그 쓰임을 염두에 두고 공부한다면 인문학은 적절치 않다.. 이 학문이 좋아서.. 그렇게 한다면 너에게 권하고 싶다.."
라고...
나는 나의 전공에 대한 미련에 찬 확신도 없었고.. 힘든 공부를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그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실용학문을 전공한 남편을 만나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나의 오빠는 그 길을 가고 있다.
도자기가 전공인 그는 지금 일본에서 박사과정에 있다..그의 전공은 현대도예이다. 물론 밥그릇을 만들고 접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 멋있는 장소에 설치될 작품을 도자기로 빚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요즘 실용과 소신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얼마전 가진 그릇전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교수들은 전통 도예가 전공도 아니면서 왜 그릇을 만드냐고 그를 질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마음에 적잖은 부담을 얻었다고 한다...
그 노친네의 글에서 보면, 공자는 백성을 이끌고 통제하는데 政이나 刑 같은 실용이 아닌 德이나 禮로써 하면 부정불의가 없어지고 염치를 알게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저기.. 우리 사회의 전반에 불거지고 있는 굵직한 문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문학의 부재가 실감나는 가을이다.
인문학 부흥의 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대학가에도 노랑색의 활기찬 청춘들이 활보할 날을 기다리며...
딸그닥 딸그닥 이럇 닭호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