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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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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


BY nerowolf 2002-05-29

같이 근무하던 나선생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급성췌장염으로 입원하시고 사흘만에 폐혈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으셨다.
친정아버지와 연세가 같으셔서 더 남의 일 같지 않다.

울아버지가 많이 생각나는 밤이다.

아부지는 참 부지런도 하셨다.
주말마다 한주도 안빼고 배낭을 지고 두살 터울 남매를 앞장세워 서울근교 산이란 산은 다 데리고 다니셨는데 매번 석유버너에 코를 바짝 대고 거의 땅에 엎어지신 채 열심히 펌프질을 해서 찌개며 밥을 잘도 해 먹이셨다.
봄에는 창경원으로 벗꽃놀이를 갔었고 여름엔 매번 만리포로 해수욕을 갔었고 가을엔 외가집에 벼베러 갔었고 겨울엔 자주 감기에걸리는 남매를 위해 주말엔 외출 한번 안하시고 연탄난로에 양미리를 구워주시거나 그을음이 올라오는 석유곤로에 김치부침개를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가용도 없던 시절에 무슨 힘으로 그렇게 다니셨는지...

식구들 생일이며 당신 결혼기념일, 처가집 식구들 대소사며 처삼촌 제사까지.... 유별나다 싶을 만큼 챙기고 다니셨는데...
아마도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형과 단둘이서만 너무 오래 살아와서 가족의 정에 메말라있었던 탓이 아닐까.

엄마는 아빠의 다소 방탕하시고 게다가 지나치게 사교적인 성격이 좀 불만이셨지만 적어도 자식들에게 끔찍한 것 하나 만은 늘 접어주셨다. 하지만 가끔 우리들을 아빠가 데리고 온 자식처럼 싸고 돈다고 투덜거릴 정도였으니까 아부지의 자식사랑은 참으로 각별했지 싶다.

나선생 아버지가 입원하시던날...
배가 아파서 동네병원에 가셨는데 안받아 주신다며 전화를 하시고는 오셨는데....
나선생은 엄마가 고무신을 신고 오신게 챙피하다고 했었다.
'이번 주말에 갈텐데 좀 기다리시지...'란 말도 했었다.
그리고 사흘만에 임종하셨으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왜 아닐까.

자식은 언제나 철이 없는데 부모님은 자꾸만 늙어가신다.

아부지 등에 업혀 올랐던 북한산은 그저 전설속에 얘기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인줄 알았던 아버지의 어깨가 아주 작아보였던 어떤 날의 기분...
어쨌든 가슴이 시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