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비만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18

복례엄마(2)


BY 심향 2001-04-24

지금 내 코끝에 머무는 아련한 향기가 있습니다.
방문을 열면 어둑어둑한 방에서
캐캐묵은 짚단 ??는 냄새가 풍겼습니다.
몇채 안되는 우리 동네에
초가집은 단 한채 복례네 집 뿐이였습니다.
짚푸라기를 엮어 만든 둥근 초가 지붕,
그 지붕을 닮아서인지 복례네 식구들은 모두
마음씨가 모나지 않고 동글동글 착했습니다.
내친구 복례는 맏딸인지라 어려서부터 밥도 짓고 살림도 도맡아 하면서
공부까지 잘했습니다.
그런 친구를 보면서 나는 우리 엄마한테 꾸지람도 무지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 자식에겐 절대로 다른 누구와 비교하지 말고 키워야지.
이쁜옷 입고 맛난 것 먹으면서 복례앞에서 으시댄적도 많았지만
마음 한구석은 항상 주눅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내 자식 입에서
"엄마 제발 은식이랑 나랑 비교 좀 하지 마세요."
이 어리석음이란... 잠시 샛길로 빠졌습니다.
아주 오랜전 복례네 사랑방 쪽문에서
복례아버지가 관도 없이 널빤지에 들려 나왔습니다.
어머니 치마폭에 감겨 멀찌감치에서 바라본 죽음은,
태어나 처음으로 맞닥뜨린 두렵고 낯선 조우였습니다.
그후로 방문이 훤히 열린 복례네 안방은 서서히 우리들 실내 놀이터로 변해갔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나, 초가 지붕위에 소담하게 눈이 쌓이는 날,
이도저도 아니고 뛰어 놀다 지쳐 버린 날.
그런 날이면 복례네 안방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억세게 재수 좋은 날에는
낯빛 한번 흐린 적없는 복례엄마가 유도복을 꿰매다 말고(옛날 아줌마들 부업)
개다리소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개떡과 시원한 동치미를 금방 차려 왔습니다.
그 구수한 맛이란!
또 추운 겨울날에 쉰 김치만 넣고 얼렁뚱땅 빚은 만두를 얻어 잡숫고
그 비법을 친정엄마는 두고두고 아리송해 하셨습니다.
여느때와 같이 안방에서 구들장이 무너져라 뛰어 노는데
골방에서 희한한 신음(?)소리가 들리는거에요.
그때는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구부려야 드나들수 있는 작은 방문 틈새로 쉬임없이 새 나오는 소리
순간 하던 짓을 멈추고 그곳으로 정신이 쏠렸습니다.
가까이 갈수 없지만 뭔가 짜릿한 전률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이에게도 인간의 본능이 숨어 있었던가봅니다.
알고 봤더니 갓 결혼한 신혼부부에게 신방(新房)으로 세를 놓은 거에요
두 사람만 겨우 누울 정도의 작은 골방에는
신혼 살림따윈 거추장스러웠고
처마 밑에 달랑 아궁이 하나 있는것이 그들의 부엌이 되 주었습니다.
괴상한 소리는 점차 행복에 겨운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고...
오글거리는 식구들 다 어떡하라고 사랑방 마저 세를 놓고
땅한뙈기 없는 복례네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더욱더 가세가 기울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부턴가, 복례네 처마 밑에는 하얀 깃발이 나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복례엄마가 예전부터 신기가 있다는 소리는 어렴풋이 들었지만
무당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조그만 동네에 무당이 둘이나 있다니.
이미 큰무당이 되어 인근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인자엄마가 계시는데...
인자네 엄마의 푸닥거리는 종종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전물상을 차려 놓고 쾌자자락 휘날리며 덩실덩실 춤출때는 덩달아 흥에 겨웠고,
예리한 칼날위에서 사뿐사뿐 걸어 다닐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기도 했습니다.
넋대가 괴기스럽게 흔들릴땐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타날것 같았고,
죽은이의 혼백이 나타나 호령을 할때는 마음은 벌써 먼곳으로 달아난 뒤였습니다.
그러나
복례네 집으로 점을 보러 오거나 긋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잡귀를 내보내 듯 신혼부부를 내보내고
정성스레 신방(神房)을 꾸며 놓았는데도 말입니다.
날이 갈수록 의기소침해 지는 복례엄마는
어느날 소리없이 깃발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몇해가 흘렀습니다.
큰오빠는 막노동, 둘째오빠는 공장으로
내친구 복례는 공부도 잘했는데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부잣집으로 식모살이가고,
모르겠습니다. 줄줄이 남겨진 동생들은......
들려오는 소문에
복례엄마는 솟아나는 신기를 주체할수 없었던지
하릴없는 놈팽이와 한지붕에서 한솥밥을 먹고 지내기도 하고,
병든사람 뒷수발까지 도맡아 하다가 고이 보내 드리기도하고,
산비탈 따비밭을 붙이며 살아가는 가난한 농부와도 살았답니다.
그곳에 사실때는 복례와 함께 가 뵌적이 있었지요.
악의라곤 전혀없는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시던 마음씨 좋은 복례엄마.
고향이 생각 날때마다 가끔씩 우리 엄마를 만나고 가신다는 복례엄마를 돌아가시기 몇해전 우연히 친정에서 만났습니다.
그 구수한 입담으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엮으면 족히 10권은 될것이다."

= 오늘 제가 쓴 몇줄의 글이 당신이 살아온 삶에 누를 끼쳤다면 진정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