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오른팔의 인대가 늘어나 병원신세를 진 적이 있다. 너무 무리를 했던 탓인지 치료를 받아도 쉽게 치유가 되지 않았고 오랜 시간의 아픔은 우울증으로 변해가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시댁과 친정이 가까이 있어 도움을 받을 처지도 아니었고 집안 일에, 두 아이에 나는 갈수록 예민해져만 갔다. 그런데 아픈 와중에 깨달은 것이 있다면 아마 남편의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평상시 남편은 참 무뚝뚝한(앞의 글에서도 씌여있지만)남자였는데 내가 아픈 이후로 남편은 나를 대신해서 집 안의 모든 일을 아주 완벽하게 해 주었다. 남편은 퇴근해 돌아와 곧장 밥이며 설거지, 빨래에 청소도 또 아이들의 목욕이며 둘째의 기저귀까지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대신해 주었다.
얼마 후 남편의 생일이 바로 다음 날로 다가왔다.
나는 전날 밤 남편의 잠든 모습을 확인하곤 겨우 미역국만을 끓여놓고 잠을 잤다. 다음 날 아빠 생일인 것을 안 큰 아이의 케익타령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그 때의 난 예민한 탓인지 모든 것이 그저 귀찮기만 했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고 남편이 퇴근을 했다. 큰 아이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는데 "엄마, 아빠가 케익을 사오셨어요"하는 거였다. 정말 나가보니 맛있는 모카케익이 남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내의 생일은 잊어버리기 일쑤인 사람이 어떻게 본인의 생일날 케익을 사 올 수 있는지.....
내가 거듭 놀리니까 남편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케익을 사 온 이유 중 하나는 큰 아이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네가 미안해 할 것 같아서야"하는 거다. 그 말에 나는 누가 미안해한다고 하며 큰 소리를 쳤지만 남편의 작은 배려와 따뜻함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남자, 하지만 마음 깊은 성격 탓인지 가끔 유치하고 철없는 아내의 투정까지도 아무 말없이 받아주는 남편이 나는 그저 고맙기만 하다.
남편은 알고 있을까?
남편이 나에게 가장 큰 울타리이듯이 나 또한 남편의 작지만 커다란 울타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