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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거지2/그가 돌아온 자리


BY 봄비내린아침 2001-04-24

부자거지,,

그가 돌아왔다.

새카맣게 그을렀던 얼굴은 6개월쯤의 감옥살이에 희끗 탈색되었고, 마른 덤불같이 엉키고 설켰던 머리도 반듯이 잘려져있다.

약간 살이 올랐나 싶을 만치 건강해보이고, 혈색 또한 좋아보인다.

다행이라 말해야할까?

얼굴가득 조금은 여유로운 미소가 넘쳐난다.

그리고, 그가 트레이드 마크처럼 겹겹이 쌓아입고다니든 시커멓고 덕지덕지 기운 겨울외투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세월속에 세상의 짊을 벗듯 훌러덩 벗어버린겐지도 모를일이다.

어울리지않게도 아직 새것인양 보이는 흰색 반팔 셔츠를 입은 그가 내 가게에 들어섰을때, 나는 다른 인줄 알았다.

얼마나 된 일이었을까?

하마, 6개월쯤 전의 일일게다.

늘 덕지 덕지 기운 누더기를 세겹 네겹 껴입고는 사시사철 같은 길,같은 곳으로 돌고 돌며 동냥질을 일삼던 그가 어느날 떡하니 텔레비젼 '시장 상인 상해사건'에 붙혀져 보도되었던 것이...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것은
그가 껴입은 누더기의 군데군데, 구석구석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온, 꼬깃 꼬깃한 만원권 지폐들이었다.

그는 동냥질과 비럭질로 모은 전 재산을 행여 누가 채갈새라 온몸에 지니고 다녔던게다..

그의 몰골이며 차림새로 넘겨짚어 출감한지 얼마되지 않은 듯 여겨진다.

그는 예의 그 "도와주이소"를 외치며 익히 그가 돌았던 그 코스대로 오늘도 구걸을 일삼는다.

나는 오백원 동전을 건네 주었다.


생각하면, 그를 동냥질에 길들인건 다름아닌 우리들인지도 모를일이다.

왜 그가 멀쩡한 사지육신을 가지고 동냥질밖에 할게 없었는지 모르지만,

6개월 감옥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그가 다시 동냥질을 할 수 밖에없는 것은, 그가 익히 배워온 삶의 방식의 전부가 동냥질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동전을 받아든 그의 얼굴엔 기쁨도 감사도 없다.

단지, 그는 당연히 받아야할 것을 받은 양 치례적으로 고개만 끄떡하고는 다른 집으로 들어선다.

더러,아니 많이는 동전은 커녕 된소리를 들으며 쫓겨나기 일쑤이련만, 그렇게 내쳐진다고 해서 그가 실망하거나 낙담하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누가 동냥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는지..

어쩌면, 그에겐 어린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한 갈래의 길만을 길이라고 생각하듯

인생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동냥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는 돌아왔다.

누구 하나 반겨주는 이 없는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변함없이 오늘도 주어진 유일한 길인 그 길로 걸어가고 있다.



부자 거지 1...2000년 10월

아침부터 부산하다.

하루남은 2000년이 가기싫은건지
술에 취한 어느 아낙은 길바닥에서 포악을 떨다갔고,
손을 호호 불게하는 혹한 또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속살을 파고든다.

술취한 이들이 유독 눈에띄는 이해의 마지막 날, 오늘 한 거렁뱅이의 뒷 애기가 가십거리가 되기도 했다.

추우나, 더우나 시커먼 누더기 외투를 입은 거지 하나가 언제부턴가 시장골목에 간간 오고갔었다.

살이 찌는건지, 부은건지 나날이 그의 몸은 부풀어 올랐다.

'뒤뚱 뒤뚱' 걸음도 제대로 못걸을 정도로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커져갔다.

'도와주이소'
그가 뱉아내는 말은 그뿐였다.
앞은 약하게 뒤는 한껏 올려서.
무슨 노래의 후렴처럼 '도와주이소'를 거듭 말하고, 왔떤 길로 뒤뚱대며 돌아가곤 했다.

머리는 까치집을 지었고, 얼굴엔 숯검정을 칠한듯 시커멓다.거지에게도 일정한 룰과 길이 있다더니..

내가 1주일에 한두번 드나드는 도매시장의 어느 한켠에서도 '도와주이소'를 외치며 드나드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또 어느 어느 시장에 가면 그는 어김없이 나타난다고도 했다.

거지도 직업일까? 천성일까?

하루죙일 발품을 팔며 동냥질을 하는 그 성의와 노력이라면 무슨일을 못할까 싶기도 하다.

멀쩡한 사지육신으로 남의 돈을 구걸하는 그를 한심해하면서도 나는 더러 몇잎의 동전을 그의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나보다 못하니까'라는 간단한 동정심 내지, 손님이 이는 시간이면, 남의 이목따위에 끌려서...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가 보이질 않았다.
동냥질을 하러 내 매장을 찾는 단골 아닌 단골이야 그 말고도 몇되지만, 그가 안보인지 돌려보니 꽤 된듯도 하다.

그냥 흐르는 생각으로
'혹시, 얼어 죽었나?' 생각도 했다.

그런데, 오늘 그의 소식을 접했다.

TV는 잘 안보는(못보는) 나인지라, 한참뒤에야 그 거지가 매스컴의 한귀퉁이에 올라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나날이 몸이 부풀었던 이유는
그의 누더기 속에 온통 지폐로 채워져 가고 있던 까닭이었다고 한다.

그는 동냥한 100원짜리를 천원권으로 바꾸었꼬, 천원짜리를 모아 다시 만원권으로 바꾸었단다.

홀홀단신, 인척도 연고도 주민증도 없는 그가 은행거래는 꿈도 못꾸었고,그저 모든걸 자신의 몸에 채워넣은채, 그 몸둥이 하나만으로 온세상을 지고 다닌 모양이다.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그의 몸에서, 그의 누더기 구석구석에서 꼬깃 꼬깃 접혀져서 쏟아져 나온 그 돈의 액수..

아이러니하게도 살만한 집의 전세금정도는 족히 될만한 금액이었다나 어쨌다나.

천만단위를 웃도는 거액을 몸에 지니고 다녔던 그 거지의 삶,

한해가 막 손을 흔드는 이 저녁에 나는 막연하게 쓴웃음이 난다.

바보같은 그의 삶
그는 그렇게 돈을 거둬들여 자기속에 채우고 다니면서도 딱딱한 한조각의 빵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있었다.

천상 거지는 거지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그의 애기가 드러난 건 경창서에서였다.

매일 시장어귀를 드나드는 그를 상인 아낙 몇명이 괜시레 약을 올려댄 모양이다.
'이러쿵, 저러쿵'

순간적으로 끓어오른 그의 밑바닥 자존심인지 오기인지가 가까이 있던 식도를 휘두르게 했고, 그 칼에 누군가 피를 흘림으로 해서 그는 이내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고 한다.

'이 돈으로 무얼 할거였나요?'라고 묻는 경찰에게 좀 더 모아서 식당이나 하나 차릴까 생각했었다고 그가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더 웃기는 것은 IMF가 오기전에 그의 하루벌이는 10만원을 넘길때도 있었다고 하더란다.

넘어오고 넘어온 애기인지라 나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쯤, 그는 냉한 철창속, 아니 어쩌면 일찌기 겪지못한 가장 따스한 겨울을 맞고 있을지 모른다.

이 추운 겨울거리에 비하여 후끈한 그곳, 또다른 세계속에서 또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고 있을까?

망년회다, 해돋이다 분주하고 부산스럽게 사람들이 빠져나가버린 상가, 일찌기 손님은 끊어졌고, 난로불앞에 앉아 곰곰 생각을 씹는다.

그가 거둬들인 그 돈,

그의 꿈이었을지, 욕심이었을지, 더러운 거지근성으로 모은 그돈의 임자는 누구이며, 행방은 어찌되었을까?

그 속에 들어가 있을 몇잎의 내 동전탓인지, 그돈의 임자가 누구인지 묻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