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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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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입양 실패기 (끝)


BY wwfma 2002-05-27

의사선생님은 딸아이의 진찰 후에 챠트를 보면서 볼펜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웬만하면 약을 지어주지 않아서 예전에도 세 번에 두 번은 그냥 나오던 병원이다.
"기침이 너무 오래되어 약으로 다스려야하긴 하겠는데..."
톡톡톡톡…
나는 참지 못하고 내 엉터리 진단을 내비쳤다.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저희 집에 강아지를 키우는데 그 강아지가 감기예요.
혹시 강아지 감기가 옮은 건 아닐까요?"
의사는 드디어 어깨를 펴더니 딱한 사람 본다는 듯이 눈에다 힘을 주었다.
"아니, 그 집 아이들이 모두 코가 약한데 강아지를 키우면 어떻해요?"
치료까지는 안 받을 정도지만 둘 다 알러지 체질이라는 소리는 예전에 들은 터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나오는데도 의사선생님은 다짐을 두었다.
"개 꼭 없애요!"

딸아이는 '없애요'라는 말이 주는 기분 나쁜 어감 때문에 벌써부터 눈물바람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당당한 핑계거리가 어딨냐 말이다.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나는 설득 작업 중이었다.
벌써 두 달이나 잠을 못자고 심지어는 토하기까지 했던 기침 끝이라
저도 달리 반항을 하진 못했다.
그저 시무룩했을 뿐이다.
집으로 오자마자 두 번째 걸림돌인 남편에게도 통보를 했다.
무지 섭섭했겠지만 자식의 건강 때문이라는 데 어쩌랴.
괜스레 딸애한테 '너 땜에 강아지를 보내게 됐잖아'라고 한번 퉁박을 주는 바람에
'아빠, 미워'하며 우는 딸의 뒷감당까지 맡아야했다.

그 날 이후로 꼬미는 우리집에서 은근히 애물단지가 되었다.
치와와만큼 작아서 남편이 하루종일 고심 끝에 지어온 이름이
성은 '쪼' 이름은 '꼬미'였던 그놈이 변신 2개월만에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먼저 우리에게 개를 주었던 아주머니에게 그 간의 이야기를 하고
그 곳에 돌려보내는 게 가장 순리일 듯 했지만 아주머니는 그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이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게 강아지지만
그걸 키워보겠다고 선뜻 나서는 엄마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래저래 딸 시집보낼 엄마처럼 혼처를 물색해야했다.
내 집에서 키우던 것이 어디 가서 불행해지는 것은 두고두고 신경이 쓰일 일이라
될 수 있으면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도 혼처는 엄선할 일이었다.

하지만 엄선할 것도 없이 강아지 좋아한다고 쓰다듬던 사람들도
'가져가서 키워볼래?'하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몇 년만에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간다고 들떠서
그 전에는 홀가분하게 처분하고 가리라 맘먹었던 날짜가 점점 다가왔다.
잠시라도 맡아줄 사람을 찾는 게 더 급해졌다.
이런 주인 아줌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집 꼬미는 개밥은 싫다고 단식투쟁 중이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놈 같으니라구…

"띠로띠로띠로띠로로♬~♪~"
우리집으로 일주일마다 한번씩 영어공부 하자고 건너오는 친구의 방문이었다.
홍수같이 흘러 넘치는 감정 놀음에 지레 겁을 내는 이 어릿한 친구는
공부를 매개로 저 나름대로의 성취감을 채워나가는 차분한 성정을 갖추고 있었지만
친구들과의 날고 뛰는 수다발에는 매번 진도를 못 맞춰
제 풀에 두 손을 들고 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썰렁녀다.
공부하는 내내 말없이 강아지를 무릎에 앉혀두고 있는 꼴을 보자
나는 뭐 눈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또 작업을 걸었다.
"야~, 너 그 강아지 안 키워볼래?"
"그럴까?"
너무나 대답이 선선해서 오히려 불안했다.

"내가 며칠 놀러 갔다올 동안 니가 맡아서 키워봐라.
시험기간을 거쳐보고 키울만하면 그 때 완전히 보낼께."
돌리라고 있는 머리는 분주하게 제 계산껏 돌아갔다.
시집을 못 보내게 되더라도 어쨌거나 강아지 호텔비만은 건진 꼴이지 않은가?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어 조바심이 난 그 집 아들에게 인자한 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드디어 무겁지도 않은 놈이 몇 달 동안 나에게 주었던 무거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며칠간의 행복한 휴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빈집에서 주인 들어오기를 우울하게 기다릴 강아지 걱정이 없어서 편안했으며
개밥이나 개 똥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게 홀가분했다.

그래도 집으로 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강아지에게 안부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저 놀 때는 즐거워서 생각도 안하던 놈들이 강아지가 궁금하다고 성화를 대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개 때문에 힘들었을 친구에 대한 예의로라도 전화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야, 니 딸 잘 있다. 왜 이렇게 이쁘니~~ 너네 이거 진짜 우리 줘도 괜찮냐?"
느릿느릿 웃으며 말하는 친구에게 나는
구박을 일삼던 계모가 인사 받을 때처럼 계면쩍어 송구스러웠다.
어쨌거나 우리는 강아지 살림도 가져다줄 겸 마지막 인사는 해야했다.
또 데려왔다 다시 데려가는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기 위하여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아직 인간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우리집 막내아들만 그 간의 사정을 통보받지 못한 채
황망한 이별소식을 접하고 뒤늦은 대성통곡으로 우리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한 보따리를 챙겨서 그 집에 들어서니 마치 그 집 주인처럼
내가 키우던 그 개가 우리를 손님처럼 맞았다.
반가워는 해주었으되 내가 기대하던 것만큼은 아니었다.
내 무릎만 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에게도 똑같이 덤비는 게 꼭 속은 기분이었다.
우리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군기가 빠져 안방에서 같이 자고 소파에 올라가 누웠으며
뭔 속이 그리도 편한지 밥도 한 그릇씩 잘 먹는다고 했다.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옛 주인의 위치를 생각해서
한시간이나 개 키우는 요령과 주의사항을 일러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우리 셋은 친구 팔에 매달린 강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쓸쓸히 그 아파트를 걸어나왔다.
10분 거리니까 언제라도 볼 수 있다고 아이들을 다독거리면서…

이렇게 해서 일년을 끌어왔던 강아지 입양의 엄청난 프로젝트는 실패의 끝을 맞았다.
아직도 딸아이의 기침은 완전히 멎질 않아 온 식구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나중에 여건이 허락된다면 불쌍한 아이를 입양해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했던 우리의 의논은
남편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었다지만
난 절대 불가의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스푼의 사랑을 베풀면서도 그토록 속을 끓이던 간장종지 만한 인간에게
어찌 한 인간의 삶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양분이 남아있겠는가.
나는 끊임없이 괴로워만 하다가 말라 죽어버릴 것이다.

입양 실패 후 나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면 네 발로 기어와 내 다리를 긁어대며
마음에 안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으릉~왈왈.." 개 흉내를 내는 아들과
생색만 내다가 어눌한 친구의 넉넉한 사랑에 밀려 코가 빠진 참담한 기억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제 가끔 그 친구와 함께 놀러오는 강아지 꼬미는
살이 둥실둥실 오르고 개털도 길어져서 더부룩하지만
훨씬 편안해지고 행복해 보인다.
그래도 반갑다고 안아주면 냄새나는 개혓바닥으로 내 턱을 핥아준다.
그럴 때면 나는 듣는다.
'네가 그동안 나에게 부린 패악을 다 용서해줄게. 너도 힘들었겠지? 내가 다 알어...'
하는 그 놈의 은근한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