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동에서-
일곱갈레 찢어진 무를 본적 있습니까
언니가 원서동 전통한옥에 살 때 가끔 이맘때쯤 땅에 묻은 항아리 속에서 갓 꺼내오는 무짱아치의 맛은 일품이였습니다. 소금물에 고추씨를 둥둥띄워 겨울내내 담거뒀던 무는 언제나 일곱갈레쯤 찢어져있었습니다.
무우냐 인삼이냐하면 이건 인삼이 아니라 인삼을 닮은 무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어느시골에서 인삼을 재배하는데 무우씨를 뿌리면 언제나 이런모양이 나온다고 하는데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언니네집에 갈때마다 인삼처럼 갈레가 많은 무짠지를 먹었습니다.
어느 토요일오후
언니는 퇴근하면 곧바로 자기집으로 오라는 호출이왔습니다
평소에 잘 알고지내는 신부님 한분과 막내동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여주에 어느 수녀원에 간다고 동행하자했습니다
나는 도무지 여행할 복장이 아니라니 집에 들릴 시간도 없다하며 그냥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비가 쏟아져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찻속은 즐거운 웃음이 넘쳤습니다
언니는 어딜가든지 나를 데려가기를 좋아합니다
어렸을때는 덩치가 큰 나한테 맨날 얻어맞고 아버지한테 고자질만 하더니..
지금은 만나면 즐겁고 언니는 내기분을 잘 맞춰줍니다
아직도 키작고 체격도 자그만 언니는 언제나 나를 든든한 백처럼 기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수녀원에서 하룻밤을 자고올 예정인데 꼭 내가 따라가줘야 언니가 안심이였던 것 같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의 여행이였지만 나나가 있는 곳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경기도 여주 점동의 한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의 환대를 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말하는 구관조의 기도말을 듣고 신기했습니다
하룻밤 경건생활로 그들과 같이 있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뒤로하고 세자매는 세상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첩첩산중으로 인적이 드문 강끝마을로 갔습니다. 계속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도착해서 그집 부부의 환영을 받으며 이야기 하는중에 천둥번개가 연신 '꽈과광~! 하면서 집을 통채로 삼킬듯 뒤흔들었고 그럴때마다 전기가 스파크를내며 '퍽~!'소리내며 꺼지고 또 들어왔다 금방 꺼지고..
집주인은 촛불을 켜 탁자위에 놓고 오랜만에 사람구경하는 터라 연신 소주,맥주와 담배를 권합니다.
언니와 동생은 조금씩 자꾸만 술을 받아마시고 나는 전혀 관계없는 음식이므로 그저 말상대만 척척 해줬습니다.
이런 첩첩산골 강마을에 살아 사람구경 못하지만 외국가는 비행기 타는 일만큼은 '촌년 시외버스타듯' 한다는게 집주인의 표현이였습니다. 이따금씩 외국에는 간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집주인의 표현이 너무 재미있어 까르르 웃으며 연신 하늘에서 빛이 번쩍번쩍하는 고압의 전력을 구경했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천둥번개가 때려대는건 신부님,수녀님들의 은혜의 동산에서 속세로 내려왔기 때문인가.. 생각했습니다.
밤을 꼴딱세워도 집주인의 이야기보따리는 끝이 없을 것 같아 우리는 연신 하품을하며 잠자리를 찾았습니다
집주인이 잠자리로 마련해 준 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초가집 오두막 방이였습니다.
집주인은 인삼을 시험재배하러 이곳에 정착했다합니다. 경관이 수려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 20여 가구가 띄엄띄엄 살고있는 집을 하나씩 사들여 비우고 여름에 민박으로 빌려주며 인삼도 연구하면서, 무씨를 뿌리면 인삼처럼 일곱갈레 찢어진 맛좋은 무가 나온다했습니다.
바로 그 인삼무우집에 하룻밤 머물게 되었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강하나 사이로 끼고있어 이집의 주소는 경기도 여주이지만 일하는 인부를 부르든지 수퍼에서 식료품을 살때는 강원도에 주문해 배타고 배달해온다는 아주 재미있는 집이였습니다.
청소나 정돈이 돼있을 리가 없지요. 이미 전기불은 다 나갔지요. 전화선도 천둥에 끈겨 이미 불통이 된지 수시간은 된 것 같았습니다.
조그만 손전등 하나와 비우산과 진돗개 '순이'를 딸려 보내며 집주인은 연신 '순이야~ 선생님들이야... 이모들이라구.. 잘모셔얀다~~응~ ' 했습니다. 진돗개이름은 진순이였습니다. 졸지에 진돗개이모가 되어 하룻밤을 세운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언니와 동생은 개가무셔 '엄마야~.. 엄마야~~~ 몰러몰러~~흑!' 하면서 내뒤에 숨고, 나는 진순이머리를 쓰다듬으며 '순이야~ 착하지~~' [나나홈의 손님대표 순이님께 미안 ~,*]
방에 들어서자 오래된 밍크이불에 습기가 물이되어 질컥거리고 방바닥은 끈끈찝찝 오물이 밟힙니다. 언니동생은 쉬마렵다고 야단들입니다. 술을 그렇게 받아마셨으니 그 수분이 슬슬 배출되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방안에는 수도꼭지가 있고 싱크대가 있지만 올라가기에는..하하.. 볼일을 볼려면 밖으로 나가야했습니다.
손전등을 들고 우산을 받치고 밖으로 모시는건 내가 맡은 임무입니다.
진돗개는 충성스레 모진 비를 맞으며 방문을 지킵니다. 킁킁..소리내며
'무셔워~~~ 앙~~' 동생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급기야 찾아낸건 휴지통.. 언니는 휴지통에 비닐봉지를 씌워 해결을 도우고 자기도...[쉿!비밀] 짧은 한여름밤이 어쩌면 이렇게도 길수가 있다는 말인지..
길고 긴(?) 한여름밤을 그렇게 세워야만 했던 것이였던 것이였습니당당당...
천둥번개는 빛이되어 조그만 봉창에 번쩍번쩍 우루루루 쾅쾅~!! 하늘과 땅이 맞닿아 버릴듯 괴성을 지르면서..천지를 뒤흔들어 재낍니다
동생은 119에 전화걸어 빨리 구조대를 부르자했지만 집주인도 이렇게 사는데.. 천둥번개 치는 한밤에 누구를 불러.. 전화선도 불통인데 손전화 쓰다가 번개라도 맞을라 참자.. 이뿐우리가 참는 것이야..
잠시 후 언니를 데리고 진순이를 달래며 밖으로 배설작업을 도우러 나가봤습니다.
'엄마야~~ 무섭따~~~ 앙~~' 언니도 밖에는 절대 못나가겠다니 할수없지요.. 휴지통에다 또..
임시개발한 변기(요강)은 성업중입니다.
나야물론 진순이도 친하고 체질상 절대로 밖에서 협상(대소변을 말함)을 못합니다. 장소가 바뀌면 하루꼴딱 세워 잠도 못자고 화장실에 가도 볼일을 못봅니다.(믿거나 말거나 진짜임)
언니동생은 간편한 여행차림이니 그냥 눈만 부치면 새끈새끈잠을 잡니다. (언제 무서웠나..)
나는 스커트 입은 정장이니 벗지않으면 누울수도 없습니다.
할수없이 속옷바람으로 잠시 눈을 붙쳐봤습니다.
잠깐 잠든사이에 찍찍한게 뭔가 허벅지에 착달라붙은 느낌입니다.
씹던 껌이 붙은 기분나쁜 느낌에 손으로 살그머니 위치를 더듬었더니.. '폴짝~!' 뛰는게 아닙니까..
다시 다른 오른쪽 다리로 이동한 그 물체는 개구리! (청)개구리였습니다.
'으악!' 야밤에 천둥번개치는 날 산속 외딴 초가집에서 여자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천둥소리에 썩여 멀리 퍼졌겠지요..
으흐흑.. 흑! 그순간부터 꼴까닥 밤을 세우는데.. 흐이구... 증말 생각만해도 미쵸..
동이 훤하게 트자마자 주인이 일어나기도 전에 급히 나와 시동을 걸었습니다.
밤새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 천둥이 얼마나 많이 쳤는지 날밤(?)을 샌 우리일행은 빗속을 헤엄치다싶이 차를 물에다 반쯤 둥둥 띄워 점동을 탈출했습니다.
지금부터 한 5-6년 전쯤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경기도 여주일대를 휩쓸어간 유명한 폭풍의 시작이였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다리가 끊겨 나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나나와 세자매는 점동의 한 산속에서 태풍의 눈속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내생애 잊을 수 없는 그 한여름밤의 추억을 '귀곡산장의 밤'이라 부릅니다.
'나는 알고있다 한여름밤 귀곡산장의 사건을..'
두고두고 비오는 날이면 이야기하지요.. 귀곡산장과 청개구리의 추억을..
지나고보니 정말 스릴만점의 멋진 추억입니다.
촌년 시외버스타듯 외국에 이따금씩 나가는 그산장 주인은 지금 외국에 갔는지 시외버스를 탔는지.. 무씨를 뿌리면 인삼이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그때 그장소는 산수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신륵사' 부근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