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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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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입양 실패기 (1)


BY wwfma 2002-05-20

그 시작은 내가 500원을 너무 무시 봤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어느 따사로운 봄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마루바닥에 가방을 부려놓자마자
맘먹은 듯 다가와서 내게 작업을 걸었다.
"엄마, 학교 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병아리를 팔아요.
너무 예뻐서 30분이나 보다가 왔어요.."
나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에이, 그거 다 병난 거야. 집에 오면 하루도 못사는 거야.
그런 걸 아이들에게 팔다니... 나쁜 아저씨구나..."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었던 듯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단계의 작업을 걸어왔다.
"엄마, 나 그거 한번만 사보고 싶어요.
난, 여태 털 달린 건 한번도 못 키워봤잖아요. 네?"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난 '키운다'는 것에 어느 정도의 직업병이 있다.
어떤 한 생명을 책임지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그것이 식물이건 금붕어건 간에 감당해야할 일정 분량이 있는 법이다.
하물며 그것이 털 달린 것에까지 올라오면 난 감당이 안된다.
매번 아이의 소망을 외면하며 큰인심 쓰듯 밟아온 단계가
작은 꽃화분에서 시작하여 열대어, 거북이까지였다.
'음, 털이 없긴 없었지... "
하지만 햄스터나 쥐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답답했다.

아이는 한번 더 양념을 쳤다.
"엄마, 어짜피 하루 이틀이면 죽는다잖아요.
아저씨가 가지고 있어도 죽을 거고...
그러니 한번만 사 가지고 와 볼께요.
값도 500원 밖에 안해요.
털 달린 걸 하루만이라도 키워보고 싶어요...제발"

나는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지만 아이의 간절한 소망인 털달린 것 키워보기가
500원에 하루이틀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굳이 나쁜 딜일 것 같지는 않았다.
500원이라잖는가? 까짓것.
"너 그 병아리 죽었다고 울고불고 안 할 자신 있냐?"
나는 다짐을 두었다.
아이는 벌써 나의 반승낙에 입까지 헤벌레해져서 무조건 끄덕인다.
"알아요, 알았어요"
그러나 와중에도 챙길껀 또 챙긴다.
"엄마, 하나면 너무 외롭잖아요, 두 마리만 살께요. 네?"
기왕 내친 걸음이다.
500원짜리 두 개! 1000원짜리 과자도 사주는데 뭐 대수랴 싶어
선선히 승낙을 하고만다.

아이의 두 발이 날라가는 그 애의 마음처럼 제 템포를 잃어버리고 허둥대며
1000원을 손에 쥐고 학교 앞으로 달음박질을 한다.
그리곤 이내 노오란 털이 달린 병아리 두 마리가 우리집 마루로 들어섰다.
제가 고른 한 놈은 제법 튼실한데 아저씨가 끼워준 한 마리는 비실거린다고
연방 상자 속을 들여다보며 걱정이 태산이다.

그것도 생명이라 나는 오돌오돌 떠는 고 두 마리 병아리를 따뜻한 곳에 두고
찬장 안에서 좁쌀을 찾아 먹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병아리 키워본 경험자에게 훈수도 받고...
내심 하루 이틀이 한 보름쯤 된대도 참아줄 만 하다는 생각이었다.
내 딸이 그토록 좋아하지 않는가.
그 정도는 양보할 준비가 되어있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

하루..이틀..열흘...한 달이 지나갔다.
그 사이 비실대던 한 놈은 친구에게 맡기고 여행간 사이 죽어버렸지만
아직도 한 놈은 버둥대며 살아남아 점점 죽을 가망이 없어보였다.
우리집 두 아이는 눈만 뜨면 새장 속에 넣어둔 병아리를 들여다보며
"아리야...아리야...아이고 예뻐라"로 하루를 시작했고
난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 이제는 영계가 되어버린 털 달린 것을
이 집에서 내몰 궁리에 심란해지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람만 만나면 다 키운 닭을 어떻게 처분했냐는 게 나의 관심사였다.
사오기만 하면 하루이틀에 죽는 줄 알았더니
그 병아리가 장닭이 되도록 키워본 사람도 여럿이었다.
시골가서 착해보이는 소년에게 입양시키면서 엉엉 운 이야기도 들었고
온 식구가 피크닉을 가장하여 데리고 나가 아이들 노는 새에
엄마가 새장 문을 열어 내보내고 잃어버렸다고 딴청을 피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딸아이는 죽을 것만 같았던 생명이 제 삶을 이어가는 것이 대견해
관찰 일기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시도 짓고...
아무튼 정서 함양에는 그 이상이 없을 정도였지만
병아리는 점점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세 달이 지나던 어느 날,
아이들 몰래 내 집안에서 저 털 달린 골칫덩이를 내보낼 암중모색 끝에
기발난 생각이 떠올랐다.

말로는 어느 날 삼계탕 해먹을 거라고 큰소리도 쳤지만
말만한 배포는 없는 허풍쟁이 아니던가.
작은 아이 유치원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명분도 좋았다.
작은 새장에 혼자 심심하게 갇혀있느니 친구들과 큰 닭장에서 같이 놀면
우리 (병)아리가 훨씬 행복해질 거라고
내 욕심을 버리고 병아리가 행복한 길을 택하라고 종주먹을 댔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그러마고 했고 그 길로 나는 유치원에 달려가서
착착 일을 진행시켰다.
며칠은 그래도 집안에서 키우던 거라 아이들과 지나다닐 때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한 달도 안되어 유치원 닭장이 텅 비어버렸을 때도
모두 어디다가 옮겼겠지 하는 것 이상의 상상은 하기도 싫었다.
아이들도 제 집에서 떠나자 정도 떼었는지 '없어졌어요'로 끝이었다.

모두들 나가버린 빈 집의 적막 속에서
비로소 온전한 평화를 맛보는 것 같은 행복이
다시없이 감사한 하루하루였다.